1976년 2월 10일, 중부교회 대학생부가 발간한 회지 ‘책방골목’이 경찰의 표적이 되며 사건의 전개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회지의 인사말에서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실현하자”는 내용이 문제가 되었고, 이로 인해 부산대학생 조태원, 동아대학생 이태성, 부산대학생 김영일이 구속되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YMCA의 핵심 인물들이었습니다.
경찰은 이들을 연행한 후, 박상도의 집을 압수수색하고 일기장 등을 압수했습니다. 그리고 중앙정보부로 연행된 박상도는 심문을 받으며 “순진한 학생들을 선동해서 희생시키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공포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은 위협을 느끼며, 박상도는 각서를 쓰고 그날 밤에야 풀려났습니다.
다음 날, 박상도는 부산시경에 가서 학생들을 면회하려 했지만 신병 인수는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듣게 됩니다. 결국 학생들은 교도소로 이송되었고, 김광일 변호사가 이 사건을 무료로 맡아 변론했습니다. 세 학생은 재판을 받은 후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이 사건은 부산에서 긴급조치 9호가 적용된 첫 사례로, 중앙정보부는 YMCA 중심의 학생 활동이 활성화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공포감을 조성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해 1월, 최성묵의 중부교회 전도사 취임식이 진행되었고, 심응섭 목사는 그의 지도 아래 많은 일을 맡아 나갔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책방골목’ 사건이 발생하자, 엠네스티 부산지부가 결성되어 지원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김정한, 김광일, 최성묵 등은 이 지부의 중심 인물로 활동하게 됩니다.
최성묵은 당시 긴급조치와 반공법 위반 혐의로 대구교도소에 구속된 백현국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백현국은 대구 민주화운동의 젊은 지도자로, 출소 후에도 중부교회와의 관계를 유지하며 지역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한편, 최성묵은 목사 안수를 받으려 했으나, 기독교장로회 경남노회는 그의 술과 담배 문제를 이유로 안수를 거부했습니다. 그는 결국 각서를 제출하고 다음 해에야 안수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회의 반대 배경에는 그의 진보 성향이 자리잡고 있었고, 교계 내부의 정치적 대립은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책방골목’ 사건은 단순한 학생 구속 사건이 아니라, 당시 한국 사회의 억압과 저항, 그리고 민주화를 향한 젊은이들의 열망을 상징하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과거의 아픔을 돌아보고, 현재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차성환 지음(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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