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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뜨거워지고 정치는 차가워졌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기억을 붙잡고 싸우지만, 정작 미래를 위한 질문은 자꾸 뒤로 밀린다. 역사는 단순히 지나간 시간이 아니다.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기억이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거울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모리스 알박스가 말한 ‘집단 기억’처럼 사회는 무엇을 기억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방향도 달라진다. 산업화의 땀, 민주화의 희생, 외환위기의 고통, 코로나의 상처도 한국 사회가 함께 기억해야 할 자산이다. 그런데 정치가 자신의 유리한 기억만 꺼내 들고 불편한 사실은 덮는다면 역사는 금세 정치적 장식품으로 전락한다. 기후위기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면 행복해질 것이라 믿었지만 이제는 지나친 개발과 탄소 배출이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성장의 빛 ..
아침 7시 30분, 지하철 손잡이를 붙잡은 청년이 휴대전화로 채용공고를 확인한다. 월급 280만 원짜리 계약직, 왕복 두 시간 출퇴근의 정규직, 경력을 요구하는 신입공고가 줄줄이 뜬다. 취업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진짜 싸움은 그때부터다. 월급날 통장에 돈이 들어와도 미래가 따라오지 않는다. 월급 280만 원을 받아도 월세 70만 원, 식비와 교통비, 통신비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은 많지 않다. 여기에 학자금이나 대출이자까지 빠져나가면 저축은 꿈처럼 느껴진다. 친구가 결혼했다는 소식에 축하하면서도 속으로는 생각한다. ‘나는 언제 집을 구하고 가족을 만들 수 있을까.’ 취업준비생의 하루도 만만치 않다. 오전에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오후에는 자기소개서를 고친다. 면접관은 “직무 경험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저녁 8시, 직장인 A씨가 휴대전화로 은행 앱을 연다. 월급은 들어왔지만 주택담보대출 이자, 관리비, 카드값이 차례로 빠져나간다. 통장 잔액을 바라보다 결국 외식 약속을 취소한다. 뉴스에서는 경제성장률을 이야기하지만 그의 지갑에는 성장보다 이자가 먼저 도착한다. 청년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서울 원룸에 사는 B씨는 월세와 관리비를 내고 나면 월급의 상당 부분이 사라진다. 집값은 너무 높고 전세보증금은 부담스럽다. 부모에게 손을 벌리지 않으려 아르바이트를 하나 더 시작하지만 그러면 취업 준비 시간이 줄어든다. 집이 없어서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고, 미래를 준비하지 못해서 집을 갖기 어려운 이상한 순환이다. 자영업자는 더 처절하다. 밤 10시가 넘도록 식당 불을 켜놓고도 손님이 줄면 매출보다 대출 원리금이 먼..
마트 계산대에서 10만 원짜리 소비쿠폰을 꺼내는 순간만큼은 기분이 좋다. 동네 식당에도 손님이 조금 늘어난다. 정부가 경기 침체기에 소비를 살리려는 이유다. 실제로 IMF도 2025년 한국의 재정 확대가 단기적으로 성장과 생계를 지원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현금성 지원은 취약계층에 집중하고, 경기가 회복되면 재정건전성을 다시 관리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문제는 쿠폰이 사라진 다음 날이다. 쿠폰으로 한 번 더 먹은 삼겹살이 가계의 소득을 지속적으로 늘려주지는 않는다. 임대료와 인건비를 걱정하는 자영업자에게도 한 번의 매출 증가는 숨통을 틔울 수 있지만, 높은 비용과 부족한 수요라는 구조적 문제까지 해결하지는 못한다. 더 조심해야 할 것은 신용회복 정책이다. 2024년 연체이력 정보 삭제 조치로 약 28..
퇴근길 청년이 월급통장을 확인한다. 월세와 생활비를 빼고 남은 돈으로 국내 주식에 투자하려 했지만, 어느새 미국 주식과 ETF를 살펴본다. 이른바 ‘서학개미’다. 개인의 선택만 놓고 보면 자연스러운 투자행동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커진다면 한국 자본시장은 왜 투자자에게 매력적인가라는 질문을 피하기 어렵다. 부유층의 해외 이주도 마찬가지다. 헨리앤파트너스는 2025년 한국에서 상당한 규모의 고액자산가 순유출을 전망했다. 다만 이를 특정 정부나 세금 하나의 결과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세제, 규제, 교육, 자산분산, 지정학적 위험과 해외 투자기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기업의 해외투자 역시 무조건 나쁜 현상은 아니다. 삼성전자가 세계 곳곳에 생산시설을 세우고 현대차가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것은 글로..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이른바 ‘3S 정책’으로 스포츠·영화·오락을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야구장은 권력의 공간이 아니라 국민의 공간이 됐다. 1983년 프로축구까지 출범하면서 시민은 관중을 넘어 스스로 문화를 만들어갔다. 한국 민주주의도 비슷했다. 1960년 4·19혁명, 1987년 6월항쟁을 거치며 국민은 통치의 대상에서 정치의 주체로 변했다. 민주주의는 대통령이나 정당이 선물하는 제도가 아니라 시민이 끊임없이 감시하고 참여하면서 지켜내는 생활문화가 됐다. 그렇다면 오늘 한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은 누구인가. 특정 정당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선거 결과를 절대권력처럼 이용하는 여당,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극단적 투쟁만 반복하는 야당, 사법부를 ..
공자는 기원전 5세기 무렵 제자들에게 “군자는 의로움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는 가르침을 남겼다. 조선의 선비도 벼슬보다 명분을 중시했다. 16세기 조광조의 개혁, 18세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는 권력보다 백성을 먼저 보려 했던 지식인의 고민이 담겨 있다. 유럽에서도 지식인은 권력과 긴장했다. 1898년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를 발표하며 드레퓌스 사건의 부당함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지식인의 명예가 자신의 안락함이 아니라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데 있다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한국 현대사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1960년 4·19혁명과 19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교수·학생·종교인·언론인들은 권력에 맞서 목소리를 냈다. 모두가 영웅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일부 지식인은 침묵보다 위험한 ..
정치에서 가장 신비로운 것은 숫자다. 말은 천 번 바뀌어도 숫자는 쉽게 웃지 않는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한 여론조사에서는 임명 반대 52.1%, 찬성 25.1%로 나타났다. 조사 방식과 표본에 따라 여론조사 결과는 달라질 수 있지만, 적어도 이번 인사가 국민에게 상당한 논쟁거리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런데 국회 청문회는 증인과 참고인 없이 끝났다. 특히 신약 청탁 의혹을 둘러싼 핵심 쟁점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참여연대 역시 청문 과정에서 후보자가 자격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는 취지의 평가를 내놓았다. 반면 민주당은 김 후보자가 법무행정을 이끌 적임자라는 입장이다. 결국 의혹은 의혹대로 남았고, 여당과 야당의 판단만 극명하게 갈린 셈이다. 여기서 한동훈 의원의 강한 ..
정치는 가끔 마술쇼를 닮는다. 청문회에서는 의혹이 사라지지 않았는데 보고서는 채택되고, 야당은 퇴장하고, 여당은 적격을 외친다. 그런데 국민의 눈에는 마술이 아니라 빈 상자만 남는다. 17일 국회 법사위는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민주당 단독으로 채택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사전 협의와 검증이 부족했다며 퇴장했다. 문제는 의혹의 존재와 사실의 확정을 구분해야 한다는 데 있다. 제넨셀 관련 청탁 의혹, 브로커와의 만남, 사진과 녹취 등은 각각 증거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실제로 경향신문은 양씨가 김 후보자와 정 판사를 만난 자리에서 제넨셀 관련 추가 청탁 계획을 언급한 정황을 보도했다. 하지만 정황은 정황이고, 범죄 사실의 확정은 별개의 문제다. 그렇다면 청문회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
세계경제가 다시 거친 파도를 만났다. 금리와 유가, 물가, 지정학적 갈등이 동시에 흔들리는 가운데 한국도 더 이상 ‘성장률 숫자’만 바라볼 여유가 없다. 한국은행은 2026년 8월 기준금리를 3.00%로 올렸고, 수도권 주택가격과 가계대출 증가세를 금융안정 위험으로 지목했다. 금리 0.25%포인트가 숫자 하나로는 작아 보인다. 그러나 대출을 안고 사는 청년에게는 매달 빠져나가는 이자 한 줄이 된다. 월급날 통장을 스쳐 지나가는 돈이 늘고, 전세보증금은 오르고, 식비와 교통비까지 올라간다. 경제성장이 아무리 반짝여도 가계의 삶이 팍팍해진다면 국민에게는 성장의 온기가 전달되지 않는다. 특히 부동산은 정책의 딜레마다. 정부가 토지거래허가구역의 실거주 의무 유예를 다시 연장한 것은 거래 경색과 전월세 시장의 부..
세계경제의 파도가 심상치 않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고금리·고유가·고물가의 압박이 동시에 커지는 가운데 한국 경제에도 긴장의 끈을 놓기 어려운 시기가 찾아왔다. 그런데 이상하다. 경제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때 정치권은 오히려 허리띠를 풀고 싸움부터 벌인다. 청년의 현실은 더욱 냉정하다. 월급날 통장에 돈이 들어오자마자 월세, 대출이자, 교통비, 식비가 차례로 빠져나간다. 금리가 조금만 움직여도 가계의 계산기는 즉각 반응한다. 주택시장은 규제와 완화가 반복되고, 전세 부담까지 커지면서 ‘내 집 마련’이라는 꿈은 점점 먼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정치권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가. 민주당 내부에서는 여론조사·컨설팅 업체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고, 추미애 관련 문제까지 겹치며 갈등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제기된 의..
이재명 정부는 대한민국의 국방력이 북한보다 현격하게 우세하다는 인식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은 국방예산과 경제력, 방위산업, 공군·해군 등 재래식 전력에서 상당한 우위를 갖고 있다. 정부 역시 AI·무인체계와 대드론 전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에게 묻는다. “강하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강한 것은 같은가?” 가야를 보자. 가야는 당시 동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철 생산과 교역 능력을 갖고 있었다. 철은 농기구와 무기, 교역의 핵심 자원이었다. 그러나 철이 많다고 나라가 자동으로 강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4세기 말~5세기 초 한반도 남부의 국제질서가 급변하면서 고구려의 남진과 신라·가야·왜를 둘러싼 세력관계도 크게 흔들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야가 고구려에게 단순히 ‘철이 부족해서’ 무너..
정치는 참 묘하다. 어제까지는 권력이 가장 밝은 조명을 받았는데, 어느 날 국민의 시선은 조용히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17일 발표된 시사IN 의뢰 한국갤럽 조사에서 한동훈 무소속 의원이 ‘가장 신뢰하는 정치인’ 1위에 올랐다. 11.4%였다. 2021년 이후 이 조사에서 선두를 지켜온 이재명 대통령은 처음으로 1위를 내줬다. 숫자만 보면 한동훈의 승리처럼 보이지만, 조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번 질문에서 ‘없다·모름·응답거절’이 39.3%에 달했다. 즉 국민 상당수가 특정 정치인을 쉽게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결과를 차기 권력의 예약표처럼 해석해서는 안 된다. 신뢰의 이동이지, 미래 권력의 확정은 아니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대통령에 대한 별도 신뢰도다. 이 대통령을 신뢰..
훈련장에 선 장병에게 국방장관의 별이 몇 개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장병이 궁금한 것은 딱 하나다. “유사시 저 사람이 내린 명령을 믿고 따라도 되는가?” 강신철 후보자 청문회는 이 단순한 질문 앞에서 꽤 복잡해졌다. 장남의 7억 원대 자금 문제와 철거민 특별공급을 둘러싼 의혹이 제기됐다. 여기서 의혹은 의혹일 뿐 아직 사실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후보자의 설명도 있었다. 장남의 자금 문제에 대해서는 당시 전쟁 상황으로 자세히 알지 못했다는 취지로 해명했고, 철거민 특별공급과 관련해서는 자신이 오히려 상당한 손해를 봤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제 공은 정치권이 아니라 자료로 넘어간다. 누가 얼마를 언제 지급했는지, 자금 출처는 무엇인지, 특별공급 자격과 보상 절차가 적법했는지 확인하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