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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때때로 정복자의 이름보다 한 줄의 기록에서 더 큰 비밀을 드러낸다. 금나라 정사 《금사》 권1은 왕실의 시조 함보(函普)에 대해 “처음 고려에서 왔다”고 기록한다.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의 선조를 설명하는 공식 역사서가 왜 굳이 ‘고려’를 출신지로 적었을까? 이 기록은 단순한 야사가 아니다. 《고려사》에도 완안부 수장 영가가 자신의 선조 함보가 고려에서 왔기 때문에 고려를 ‘부모의 나라(父母之邦)’라고 여겼다는 기록이 전한다. 고려와 여진이 훗날 전쟁까지 벌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매우 역설적인 장면이다. 학계의 해석은 갈린다. 김인희 연구자는 《금사》와 《고려사》에 독립적으로 남은 함보의 고려 내원 기록을 중요하게 보며 실제 고려 출신일 가능성을 높게 본다. 반면 서구의 금·여진사 연구자 허버트..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4) 에베소 교회를 향한 이 말씀은 2천 년 전 경고가 아니다. 오늘 교회를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예배는 뜨겁고 설교도 은혜로운데, 이상하게 예배당 문만 나서면 사랑의 배터리가 1%가 된다. 처음 사랑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성경은 “서로 사랑하라”(요 13:34)고 했고,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약 2:17)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교회는 이제 사랑을 사업계획서가 아니라 생활계획서로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교회가 매달 한 번이라도 독거노인의 집을 찾아가 밑반찬을 전달하고 말벗이 되어드릴 수 있다. 청년에게는 장학금만 던져주지 말고 취업 멘토와 주거 정보를 연결해 줄 수 있다. 갑자기 실직한 교인에게는 기도만 하지 말고 식비와 긴급생활비를 ..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4) 에베소 교회는 게으른 교회가 아니었다. 수고했고 인내했으며 거짓된 가르침을 분별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가장 아픈 한마디를 하셨다.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열심은 남았는데 사랑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 사랑은 무엇일까. 우리는 십자가에서 그 답을 찾는다.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고 하셨다. 십자가의 사랑은 말로만 사랑한다고 외치는 사랑이 아니다. 자신을 내어주고, 원수까지 품으며, 고통 속에서도 타인을 살리는 사랑이다. 신앙생활도 때로는 이상하게 변한다. 처음에는 예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는데, 시간이 지나면 십자가보다 직분을 자랑하고..
처음 사랑이 무엇인지부터 다시 묻자. 내가 얼마나 희생했느냐가 아니라, 내가 먼저 얼마나 사랑받았는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고 하셨다. 그런데 교회가 커지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사랑보다 직분이 앞서고, 섬김의 자리는 권력의 의자가 되며, 헌금은 감사가 아니라 영향력의 명함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천국에는 장로석 예약표도, 헌금액 순위표도 없을 텐데 교회 안에서는 왜 그렇게 줄을 세우는가. 목회자도 예외가 아니다. 목회자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교회의 머리는 목회자가 아니라 그리스도다(엡 1:22–23). 목회자의 말에 질문하면 불신앙이라 하고, 비판하면 반역이라 한다면 교회는 어느새 복음보다 사람의 권위를 지키게 된다. 아멘만 남..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사 40:3) 광야의 외침은 세례 요한을 거쳐 오늘 교회에도 들려온다. 처음 사랑으로 돌아가라는 소리다. 처음 사랑은 내가 얼마나 봉사했느냐가 아니다. 내가 먼저 얼마나 사랑받았는지를 기억하고 그 사랑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가 커지면 사랑보다 직분이 앞서고, 섬김의 자리가 권력의 자리가 되기도 한다. 장로석은 높아지는데 무릎은 낮아지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제자의 발을 씻으셨는데 말이다(요 13:14). 헌금도 마찬가지다. 헌금은 감사이지 영향력의 주식이 아니다. 많이 냈다고 목소리까지 커진다면 십자가보다 자본주의에 더 가까워진다. 야고보는 부자를 특별히 대우하는 태도를 경고했다(약 2:1–4). 목회자 역시 예외가 아니다. 목회자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교회의..
인재 영입과 권력 나눔 사이, 보수정당의 운명을 가를 선택 정치에는 묘한 계산법이 있다. 선거 때는 인재를 찾지만, 유능한 인물이 돌아오면 권력을 나눠야 할까 봐 불편해진다. 한동훈의 복당을 둘러싼 국민의힘의 딜레마다. 그의 대중적 인지도는 탐나지만, 당의 주도권과 공천권까지 내놓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사람은 필요하지만 경쟁자는 부담스럽다는 심리다. 첫째, 여론은 기회이면서 경고다. 복당에 대한 찬반이 엇갈린다는 사실은 한동훈이 보수 재편의 변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인지도와 호감도, 복당 지지율은 서로 다른 지표다. 지지층의 열광을 전체 민심으로 착각하면 정치적 계산은 빗나간다. 한동훈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인기를 당의 신뢰로 전환하는 능력이고, 국민의힘에는 그 가능성을 공정하게 평가할..
세상은 오늘도 희비가 교차한다. 배우 김혜자는 22년 동안 부부로 호흡을 맞춘 최불암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오랜 세월 쌓인 정과 추억은 기술과 돈으로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소중한 자산이다. 한편 청계천 판자촌에서 출발해 80대에 빌라 건물주가 된 사연은 성실한 삶이 일궈 낸 희망을 보여준다. 인생의 성공은 출발선보다 포기하지 않는 걸음에 달려 있다. 그러나 세계는 감동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중국이 강습상륙함에서 대형 스텔스 무인기의 이착륙에 성공했다는 소식은 동아시아 안보 환경의 변화를 일깨운다. 한미일이 북한 비핵화에 한목소리를 내는 것도 평화가 구호만으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평화를 원한다면 외교와 대화는 물론, 냉철한 현실 인식과 튼튼한 억지력도 갖춰야 한다. 경제와 정치 역시 예외가..
다문화가정 지원부터 정년 연장, 의료 현장의 수사 논란, 사법부 인사와 대북정책까지. 최근 우리 사회를 둘러싼 갈등의 밑바닥에는 한 가지 공통된 질문이 있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며, 정의의 기준은 무엇인가? 다문화가정에 대한 지원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안정적으로 정착하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필요하다. 그러나 어린이집 우선권이나 금융 혜택 등이 소득과 자산 수준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면 역차별 논란은 피하기 어렵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복지는 지켜야 하지만, 지원의 필요성과 형평성을 함께 살펴야 한다. 배려가 또 다른 불공정을 낳는다면 정책의 취지도 흔들린다. 정년 연장 역시 고령화 시대에 피할 수 없는 과제다. 하지만 임금 삭감 없는 연장만 고집한다면 청년 채용과 비정규직의 처우는 누가 책..
축구공은 둥글다. 그래서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 축구의 추락은 공의 변덕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북중미월드컵에서 대표팀이 졸전 끝에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뒤, 한국 축구는 성적 부진을 넘어 내홍과 행정 난맥상이라는 깊은 수렁에 빠졌다. 감독 선임 논란에 선수단 불화설까지 불거졌고, 국회 청문회가 열리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제는 영국 언론 가디언까지 한국 축구의 위기를 조명했다니, 축구 실력보다 내부 갈등이 더 멀리까지 진출한 셈이다. 손흥민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세계 축구를 빛낸 스타다. 그러나 스타의 명성만으로 조직의 갈등을 덮을 수는 없다. 선수단 내분설이 사실이라면 당사자들은 책임 있게 설명해야 하고, 확인되지 않은 의혹이라면 섣부른 비난부터 거둬야 한다. 언론 역시 의혹과 사실을 구분해..
정치는 정의를 외치고, 법원은 판결을 내린다. 그런데 국민이 기대한 정의와 실제 판결 사이에 큰 간극이 생기면, 민주주의라는 무대에 물음표가 켜진다.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 항소심 무죄,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의 형량 감경, 비상계엄 당시 병력 투입 지휘관 8명의 무죄 판결을 둘러싸고 논란이 커졌다. 한겨레는 이를 사법부의 보수화와 편향 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비판했다. 물론 판결의 당부는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증거와 법리에 따라 따져야 한다. 무죄가 나왔다고 곧바로 봐주기라고 단정할 수도 없지만,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는 대목이 있다면 법원은 더욱 충실하게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이재명 정권과 민주당에도 묻고 싶다. 과거 권력을 비판할 때는 정의의 북을 힘차게 두드리더니, 정작 자신들에게 불리한 문제 앞에서..
— 원칙 없는 대북정책과 한미동맹의 신뢰 국가안보는 희망이나 구호가 아니라 냉정한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다. 평화는 소중하지만, 상대방도 평화를 원한다는 보장은 없다. 대화와 협상을 추진하더라도 군사적 억지력과 동맹의 신뢰를 지키는 것이 정부의 기본 책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지뢰는 방어용 무기’라는 발언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중요한 것은 지뢰의 용도에 관한 설명보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정부가 어떤 원칙으로 대응하느냐는 점이다. 북한의 반응을 지나치게 의식해 필요한 대응을 주저한다면 평화정책이 아니라 눈치 보기 정책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대통령과 통일부 장관, 국정원장, 국방부 장관에게 묻고 싶다.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한 공통된 원칙은 무엇인가? 현 정부를 친북 정권이라고 규정하..
한동훈 배제 의혹과 자기중심적 정치, 국민은 벌써 계산기를 읽고 있다 정치는 때로 본편보다 조연의 욕심이 더 큰 웃음을 자아낸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명태균 여론조사비 대납 의혹 사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며 정치적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가운데,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를 공격하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그런데 이 장면을 지켜보는 국민에게는 묘한 의문이 생긴다. 혹시 ‘오세훈 다음은 이준석’이라는 정치적 계산이 너무 일찍 드러난 것 아닌가. 물론 한동훈에 대한 비판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정치인은 누구든 비판받을 수 있고, 그 비판은 정책과 책임을 따지는 합리적 경쟁이어야 한다. 문제는 비판의 목적이다. 상대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잠재적 경쟁자를 밀어내고 자신의 ..
북한의 자폭드론 위협과 한반도의 평화, 힘의 정치가 남긴 숙제 2026년 10월 30일,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 참관 아래 무인기와 600㎜ 대구경 방사포의 실사격 훈련을 공개했다. 특히 남측 최전방 감시초소(GP)를 본뜬 모형을 무인기로 타격하는 장면은 단순한 군사훈련을 넘어 한국을 향한 위협의 메시지로 읽힌다. 북한은 ‘힘이 곧 평화’라고 주장하지만, 과연 무기의 위협만으로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있을까? 오늘날 세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의 무력 충돌을 통해 첨단무기의 발전이 전쟁의 양상까지 바꾸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저렴한 드론이 고가의 군사시설을 위협하고, 인공지능과 무인기 기술이 전장의 판도를 바꾸는 시대다. 기술은 인류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잘못 사용하면 파괴의 ..
― 한 시대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묻는 것 한 배우의 삶이 국민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화려한 출연작이나 높은 인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는지가 더 중요하다. 배우 최불암은 오랫동안 한국인의 아버지이자 이웃으로 사랑받아 온 배우다. 특히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보여준 아버지의 모습은 농촌의 정겨운 풍경과 가족의 의미를 함께 떠올리게 한다. 극 중 아들 용식 역을 맡았던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그를 가족과 같은 존재라고 회고했다는 소식은, 연기로 맺어진 인연이 얼마나 깊은 정서적 유산으로 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전원일기》가 사랑받았던 까닭은 특별한 영웅이나 대단한 사건에 있지 않았다. 밥상 앞의 대화, 부모와 자식의 갈등, 이웃끼리 나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