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는 때때로 한 사람의 이름에서 거대한 바다를 건넌다. 4~5세기 백제의 목라근자·목만치·목협만치가 그렇다. 『일본서기』에는 목라근자의 아들 목만치가 등장하고, 『삼국사기』에는 475년 한성이 함락된 뒤 문주왕과 함께 남하한 목협만치가 나온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도 목만치와 목협만치의 동일인설이 존재하지만 연대 문제 때문에 논쟁적이라고 설명한다. 즉 이름은 이어지지만 혈통과 동일인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일본이다. 일부 연구는 목만치를 일본의 소가만치와 연결하고, 소가씨의 일부 계통을 백제계 정치세력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다른 연구에서는 소가씨의 성장을 일본 내부의 재정·창고 관리권, 계체왕조 세력과의 정치적 연합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백제 목씨가 일본 왕실을 장악했다”는 표현은 학..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다. 그러나 흉기 앞에서 경찰이 물러서고, 신변보호를 받던 피해자가 범죄를 피하지 못하며, 시민들이 오가는 쇼핑센터에서 또다시 참혹한 난동이 벌어진다면 국민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최근 잇따른 사건은 대한민국의 범죄 대응과 국민안전보호망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묻고 있다. 2021년 인천 층간소음 흉기 난동 사건 당시 경찰관들이 현장을 이탈해 피해자 보호에 실패한 사실은 국민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경찰은 현장 대응 강화와 교육 개선을 약속했지만, 안전은 선언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위급한 순간 피해자 곁을 지키고 위험에 맞서야 할 경찰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국민의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최근 인천 남동구 구월동의 한 대형 상업시..
정치는 권력을 얻는 기술이지만, 민주주의는 그 권력을 절제하는 능력이다. 국회 의석수가 많다고 국민의 뜻을 독점하는 것도, 반대하는 목소리를 억누를 권한까지 얻는 것도 아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야당 의원 징계 추진과 추미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둘러싼 논란은 한국 정치가 어디로 향하는지 묻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민주당은 주진우 의원과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에 대한 징계를 추진하고, 의원 자격 정지 가능성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징계 사유와 절차의 정당성은 별도로 따져야 한다. 국회의원의 위법·부당한 행위에 책임을 묻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징계가 정치적 보복이나 비판 봉쇄의 수단으로 비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법과 규칙은 상대를 공격하는 창이 아니라 여야 모두를 구..
대한민국 외교의 최우선 과제는 국가의 주권과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다. 자주외교는 주권국가의 당연한 권리이며, 미국의 요구라고 해서 무조건 수용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자주외교가 현실적인 안보 역량과 동맹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면 자주가 아니라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한미 간 대북 정보 공유 갈등과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검증 문제가 불거지면서 이재명 정부의 외교안보 전략이 중요한 시험대에 올랐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군의 전작권 전환을 위한 완전운용능력(FOC) 검증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보였으며, 연내 검증 완료 구상에도 차질이 생겼다. 전작권 전환은 주권 회복이라는 상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군사적 능력과 연합작전 수행 역량, 한..
“최소 10살은 어려졌네요.” 비싼 시술도, 고가의 화장품도 필요 없이 소금물만 마시면 45세 얼굴이 35세로 돌아간다니, 이쯤 되면 피부과보다 소금 창고가 먼저 문전성시를 이룰 판이다. 최근 온라인에서 눈길을 끄는 피부 관리 글이 등장했다. 주름과 기미로 고민하던 40대 여성이 수백만 원의 피부과 시술을 받았다가 피부가 민감해졌고, 고급 에스테틱에서도 관리를 거절당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반전은 뜻밖에도 소금물 한 잔이었다. 피부 장벽을 회복하고 염증을 배출하면 젊어진다는 설명까지 이어진다. 이야기만 놓고 보면 한 편의 드라마다. 자녀의 말에 상처받은 엄마, 비싼 시술의 실패, 양심적인 관리사의 등장, 그리고 소금물이라는 극적인 해답까지. 독자의 감정을 흔드는 데는 제법 능숙하다. 다만 감동적인 이야기..
검찰청이 폐지되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이 출범하면서 대한민국 형사사법체계가 큰 변화를 맞았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 권력 집중을 막겠다는 취지는 분명하다. 그러나 개혁은 명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출범 첫날부터 조직 수장과 인력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지적과 시스템 미비가 제기되면서 ‘개혁의 속도’와 ‘국민의 안전’ 사이의 간극이 드러났다. 특히 8월 말 기준 검찰 미제사건은 16만4822건에 이른다. 이 사건들이 성격에 따라 공소청·중수청·경찰 등으로 나뉘어 이관되면서 담당 기관 변경과 기록 재검토에 따른 지연 가능성도 제기된다. 문제는 수사권 분산 자체가 아니라 분산 이후 국민에게 책임질 주체가 명확한가다. 경찰, 중수청, 공소청, 공수처와 특사경으로 수사기관이 복잡해질수록 사건을 어디에 맡겨..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국가권력을 통제하는 최후의 보루다. 그런 헌법기관의 수장에게는 일반 공직자보다 더 높은 수준의 절제와 책임이 요구된다. 그런데 김상환 헌재소장이 지난해 스페인 마드리드 세계헌법재판회의 총회 출장에 배우자를 동행시키면서 배우자 여비 1,031만 3,000원을 헌재 예산으로 지출한 사실이 확인됐다. 전체 출장비는 5,821만 9,000원이었다. 쟁점은 단순히 배우자가 해외출장에 동행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핵심은 국민 세금으로 배우자의 출장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공적 목적과 예산 집행의 원칙에 부합했느냐이다. 헌재는 주최 측의 ‘동행자’라는 표현에 배우자가 포함되고, 과거에도 배우자 동행 사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출장단 6명 역시 과거 선례에 따라 예산을 편성했다고 밝혔다..
2026년 10월 3일 북한은 원산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합참은 700㎞ 이상 비행했다고 밝혔고, 한미 정보당국이 제원을 정밀 분석하고 있다. 이는 올해 들어 15번째 탄도미사일 발사다. 더 주목할 대목은 시점이다. 북한 김여정은 전날 이재명 대통령의 긴장 완화 메시지를 ‘자작 광대극’이라고 비난했고,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대화 제의도 일축했다. 그리고 하루 뒤 북한은 다시 미사일을 쐈다. 물론 대화와 긴장 완화 노력 자체가 잘못이라는 뜻은 아니다. 한반도에서 충돌을 막기 위한 외교와 대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상대가 대화를 거부하고 군사적 행동을 반복한다면 평화정책 역시 말이 아니라 억제력과 현실적 대응 능력을 함께 보여줘야 한다. 국내 문제도 마찬가지다. 10월 2일 78년 ..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한 영화평을 넘어 역사와 창작의 경계를 묻고 있다.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당시 사건의 공식 결론과 다른 가능성을 제기한다. 제작진은 “기록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극영화”이며 특정 인물을 배후로 규정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진중권 교수는 정반대의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케네디 암살 음모론과 영화의 논리가 닮았다며, 의문과 정황을 이어 붙여 거대한 배후를 만들어내는 방식에 비판적 시선을 보냈다. 특히 “영화적 상상력”이라는 이름으로 음모론적 서사가 역사적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가능성을 경계했다. 여기서 역사학자들이 강조해온 사료비판의 원칙이 중요하다. 역사가는 기록의 작성자, 작성 시점, 목적, 상호 모순 여부를 따진다..
정치에도 코미디가 있다. 다만 국민이 웃으면 풍자이고, 국민이 울면 정치 참사다. 요즘 민주당의 행보를 보면 국정 운영보다 정적 추격에 더 진심인 듯해 실소를 금하기 어렵다. 국민은 장바구니 물가에 한숨을 쉬는데, 여당은 한동훈의 약점을 찾느라 바쁘다. 국민의 지갑은 비어 가는데 정치권의 공격 본능만 풍년이다. 이재명 정부는 대미 협상과 외교·안보라는 무거운 숙제를 안고 있다. 통상과 동맹, 안보와 국익이 복잡하게 얽힌 국제무대는 국내 정치처럼 상대방을 몰아붙인다고 해결되는 곳이 아니다. 상대국은 논평 일곱 편에 협상 조건을 양보하지 않고, 외교 문제는 대변인의 목소리가 커진다고 저절로 풀리지 않는다. 이럴 때 여당은 정부의 협상력을 높이고 국익을 지키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은 한동훈 무..
예수를 기록한 역사가, 죽음의 동굴에서 살아남다― 요세푸스, 유대-로마 전쟁의 포로에서 역사가가 되기까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약 37~100년)는 단순한 고대 역사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예루살렘의 제사장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유대교의 여러 전통을 경험했고, 1세기 유대 사회와 로마제국의 충돌을 직접 겪었다. 그가 남긴 『유대 전쟁사』와 『유대 고대사』는 오늘날에도 제2성전기 유대 사회와 초기 그리스도교를 연구하는 핵심 문헌이다. 특히 『유대 전쟁사』는 그가 직접 겪은 66~70년 전쟁의 기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전쟁이 시작된 66년, 유대 사회에서는 로마의 통치와 세금, 종교·정치적 갈등이 폭발했다. 요세푸스 역시 반란에 가담했고 갈릴리 방어를 맡았다. 그러나 로마는 네로 황제의 명령으로 장..
예수께서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마 10:28)고 하셨다. 그런데 일부 교회의 모습을 보면 참 묘하다. 하나님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권력 앞에서는 허리까지 꺾인다. 성경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약 2:1)고 했는데, 우리는 왜 권력자의 명함부터 살피는가. 목회자가 정치인을 만나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니다. 교회가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복음이 권력을 감시하는 등불이 아니라 권력자를 비추는 조명이 되는 순간 문제가 시작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마 6:24)고 하셨다. 더 웃픈 장면도 있다. 우리 편 정치인이 잘못하면 “기도하며 기다립시다.” 상대편이 같은 일을 하면 “정의가 무너졌습니다!” 성경은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
고난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하지만 더 아픈 것은 고난받는 사람 옆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그런 사람을 외면하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오늘 교회는 과연 어디에 서 있는가. 예배당에는 수십억 원짜리 건물이 올라가는데 교회 주변의 독거노인은 끼니를 걱정한다. 대형교회의 화려한 행사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이는데, 돌봄에 지친 가족에게는 전화 한 통 걸기가 어렵다. 건물이 죄는 아니다. 문제는 건물보다 사람이 작아질 때다. 청년들은 취업과 주거비 때문에 결혼과 미래를 포기하고, 노인들은 병원비와 외로움 사이에서 하루를 견딘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장애인은 여전히 이동과 일자리의 벽을 만난다. 그런데 교회가 이들을 위해 하는 말이 “힘내세요, 기도하겠습니다”뿐이라면 너무 편리한 신앙 ..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기 전에 먼저 거울을 볼 때다. 주일마다 “주여!”를 외치면서 권력자 앞에서는 허리를 굽히고, 부자 앞에서는 미소를 짓고, 가난한 사람 앞에서는 “기도하겠습니다” 한마디로 돌아선다면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기도는 넘치는데 사랑은 품절이다. 성경은 꽤 불편한 이야기를 한다. 이사야는 “정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우라”(이사야 1:17)고 했고, 미가는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라”(미가 6:8)고 했다. 예배당의 조명보다 먼저 밝혀야 할 것은 우리 양심의 불빛이다. 교회의 재정도 마찬가지다. 큰 예배당과 화려한 시설 자체가 죄는 아니다. 그러나 건물에는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 굶주린 이웃에게는 지갑을 닫는다면 질문은 남는다. 헌금은 하늘에 올라갔다는데, 왜 사랑은 이웃집까지 내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