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과 디아스포라: 역사적 진실과 허구

"누가 유대인인가?"라는 질문은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1970년 이스라엘 법원에서는 유대인의 정의를 명확히 하여, 유대인 어머니를 둔 사람, 조부모 중 유대인이 있는 사람,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이 유대인으로 인정받았다. 이러한 정의는 유대인의 정체성에 대한 복잡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이스라엘은 비록 "중동의 깡패국가"라는 비난을 받지만, 높은 국민소득을 자랑하며 전 세계에서 많은 이민자를 끌어들인다. 그러나 이민 과정에서는 종종 "가짜 유대인" 문제도 발생한다. 이러한 상황은 유대인 정체성과 정치적 갈등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나치 시대의 유대인 규정
1935년 나치 독일은 뉘른베르크 인종법을 제정하며 유대인에 대한 차별을 법적으로 정당화했다. 유대인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그들과의 결혼이나 성관계는 중범죄로 간주되었다. 이는 유대인들에게 심각한 고통을 안겼고, 많은 이들이 강제 수용소로 끌려갔다.

나치가 정의한 유대인은 '완전한 유대인'과 '혼혈인'으로 나뉘었다. 이러한 규정은 애매모호하여, 유대인으로 찍히면 누구나 그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당시 독일 내 유대인 숫자는 약 56만 명으로 집계되었고, 많은 이들이 숨겨진 유대인으로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유대인의 분류와 기원
전 세계 유대인의 수는 약 1500만에서 1600만 명으로 추정되며, 세 가지 주요 그룹으로 나뉜다: 아쉬케나짐, 세파라딤, 팔라샤. 아쉬케나짐은 주로 유럽, 특히 폴란드와 독일에 거주하는 유대인들로, 이들은 나치 홀로코스트의 주요 피해자였다. 세파라딤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출신의 유대인들로, 이들은 종교적 박해를 피해 북아프리카와 중동으로 이주했다.

이 가운데 아쉬케나짐의 기원에 관한 논란이 있다. 여러 역사학자들은 이들이 카자르 왕국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8세기 카자르 왕국의 지배층이 유대교를 국교로 삼았고, 그 결과 많은 카자르인이 유대교로 개종했다. 이들은 이후 유럽으로 이주하였고,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되었다.

디아스포라 신화의 재조명
이스라엘의 시오니즘은 유대인들이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신념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아쉬케나짐의 기원설에 따르면, 현대 유대인의 다수는 팔레스타인 땅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이는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는 데 큰 혼란을 초래한다. 특히, 이스라엘의 교육 시스템에서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은 유대인의 역사와 정체성에 관한 이러한 논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며, 이는 역사적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본의 역사 교육에서 위안부 문제를 다루지 않는 상황과 유사하게, 이스라엘에서도 디아스포라와 관련된 진실이 외면받고 있다.

결론
유대인의 정체성과 역사적 배경은 복잡하며, 디아스포라 신화의 허구와 진실이 얽혀 있다. 아쉬케나짐의 기원과 홀로코스트의 역사적 맥락은 유대인 사회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 이러한 논의는 단순한 학문적 탐구를 넘어, 현재의 정치적 상황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문제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갈등의 중요한 배경이 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