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태조 성한왕과 흉노의 후예들: 문무왕릉 비문의 숨겨진 이야기

신라의 태조는 일반적으로 박혁거세로 알려져 있지만, 문무왕릉 비문에는 신라의 태조가 성한왕(星漢王)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한왕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등장하지 않는 인물로, 문무왕의 동생인 김인문의 묘비에도 신라의 태조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요?

KBS1TV는 '역사추적'이라는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비문에 새겨진 수수께끼 같은 암호를 풀어보는 2부작 '문무왕릉의 비밀'을 2024년 11월 22일 오후 8시 10분에 첫 방송합니다. 문무왕릉 비문에는 '투후'와 '15대조 성한왕' 등 암호 같은 표현이 등장합니다. 한서에 따르면, '투후'는 한나라에 포로로 잡힌 흉노족의 태자 김일제를 지칭합니다. 그는 공교롭게도 문무왕과 같은 김씨였습니다. 김일제는 한나라와의 전쟁 과정에서 포로가 되었고, 한무제에 의해 투후로 임명된 실존 인물로 밝혀졌습니다.

비문의 암호는 문무왕의 15대조인 성한왕과 흉노왕의 태자였던 투후 김일제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계림의 금궤짝에서 돌연 등장하는 신라 김씨 시조 김알지. 초기 신라 무덤과 흉노족 무덤은 모두 적석 목곽분이라는 동일 양식이며, 동일한 오르도스형 흉노 동복(솥)이 한반도 남부에서 출토되었습니다. 몰락한 흉노의 자손임을 내세운 신라 김씨 왕족. 북방의 오랑캐 족으로만 여겼던 흉노족의 후예들이 신라로 건너온 것일까요? 대제국을 세웠던 흉노의 후예들, 그들은 왜 신라로 건너온 것일까요?

김일제(金日磾, 기원전 134년~기원전 86년 음력 8월)는 한나라의 제후로 흉노족 출신입니다. 그는 흉노의 번왕인 휴도왕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14세에 부왕이 무제와의 전투에서 패하면서 한나라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후 무제의 신임을 받아 한나라 관료로 일하면서 김씨 성을 하사받았습니다. 말년에 투정후(秺亭侯), 즉 투후에 봉해졌습니다. 김일제는 역사에 등장하는 최초의 김씨로, 중국 김씨의 시조입니다. 한국의 김씨 역시 김일제의 후손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인정받지 않고 있습니다.

신라 문무왕릉비에는 '투후 제천지윤이 7대를 전하여'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또한, 당나라에 살았던 신라인 김씨부인의 업적을 기리는 대당고김씨부인묘명에도 신라 김씨의 뿌리가 투후 김일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신라 김씨 왕족은 자신의 조상을 중국 한나라 때 투후를 지낸 김일제로 간주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08년 11월, 한국방송(KBS)은 신라 김씨 왕족이 흉노족 김일제의 후손이라는 근거로 각종 고고학적 유물을 제시했습니다. 신라의 금관은 중앙아시아의 금관과 유사하고, 신라 기마인물형토기에 있는 청동솥은 흉노의 것과 동일합니다. 게다가 적석목곽분이라는 무덤 양식도 비슷하고, 머리뼈를 눌러 뾰족하게 세우는 편두라는 풍습도 동일하다는 주장입니다. 2009년 7월 18일 방송된 KBS 역사스페셜에서는 유라시아 지역의 흉노족 유골과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유골의 유전적 상호관계를 실험한 결과, 스키타이와 흉노, 신라의 유전적 유사성이 밝혀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을 토대로 김일제나 흉노족과 신라 왕실이 관계가 깊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록은 실제 사실이라기보다는 7세기 후반 들어 형성된 신라 김씨의 관념적인 시조의식의 소산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역사학계의 의견입니다. 전근대에는 가계를 신성시하기 위해 고대의 전설적인 제왕 또는 유명한 위인들을 시조로 간주하는 일이 많았으므로, 김일제 후손설은 사실로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성한왕은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로 추정되는 인물로, 문헌 사료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금석문에서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로 나타납니다. 문무왕의 15대조, 흥덕왕의 24대조라 하며, 그의 존재는 여전히 신비에 싸여 있습니다. 신라의 역사와 흉노의 관계는 여전히 많은 의문을 남기고 있으며, KBS의 '문무왕릉의 비밀' 방송을 통해 이 미스터리한 역사여행이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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