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3월 11일, 고 최성묵 목사님은 "예수님의 궁극적 관심"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셨습니다. 본문은 마태복음 4장 1~11절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은 후 광야에서 유혹을 받는 장면은 그에게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유혹은 단순한 심리적 갈등이 아니라, 신앙적 사실로서 예수님의 고뇌를 드러내는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예수님의 유혹을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하셨습니다. 첫째, 경제적 유혹으로 “돌이 빵으로 변하게” 하는 시험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굶주린 사람에게 빵 문제를 해결하라는 유혹을 받았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가난했고, 예수님도 가난한 목수였습니다. 그 시대의 유대인은 총수입의 40~60%를 세금으로 바쳐야 했습니다. 경제적 해방은 굶주림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습니다.
마태복음 4절에서 예수님은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이 배고픈 사람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유대 민족주의는 돌로 빵을 만들어야 한다는 분위기였고, 예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빵을 강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종종 빵과 말씀을 따로 생각하지만, 사실 두 가지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진정한 인간적 삶을 위해서는 두 가지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역사적 예수님이 가난에 대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가난한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그램은 영구적으로 지속될 수 없었습니다. 과학적 기술이 발전해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기아선상에 있었습니다. 둘째, 프로그램의 의미는 가난한 문제에 부딪히는 것이 스스로 길을 여는 데에 있었습니다. 이는 인간애의 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용기와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대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자는 소유에 안주하지만, 내일이 새로운 시대이므로 적극적으로 도전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에 참여하는 것이 축복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26~65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생명의 빵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생명의 열쇠이며, 궁극적인 문제와 관심은 인간화였습니다. 경제와 정치 체제에서의 비인간화는 굶주림보다 더 절실한 문제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유혹도 뿌리치고 십자가의 길을 갔습니다.
목사님은 오늘날 청년들이 직면한 문제와 예수님의 공적 생애가 깊은 관계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의 청년은 갈등을 안고 있지만 갈등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역사적, 사회적 현실에 대한 갈등이 존재하며, 비인간화 현실에 돌진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인간 해방의 궁극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치와 경제 문제가 해결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진정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빵이 해결돼도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 없이는 인생이 헛된 것이다”라는 진리를 되새겨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설교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궁극적 관심이 무엇인지 되새기고, 빵과 말씀의 관계를 깊이 이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진정한 인간적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하며, 경제적 문제와 신앙적 사실이 함께 작용해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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