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죄를 묻지 않겠다: 용서와 회복의 메시지

1990년 9월 30일, 고 최성묵 목사님은 "너의 죄를 묻지 않겠다"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셨습니다. 본문은 요한복음 8장 11절, 아사야 1장 1619절, 요한 1장 510절이었습니다. 이날 설교에서 목사님은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간음한 여자를 끌고 와서 그녀의 심판을 요구한 사건을 다루셨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를 랍비인 체 대우하며 올가미를 채우려 했습니다.

레위기에서는 간음한 사람은 둘 다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잡혀온 여자는 죽음이 자명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는 예수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이 사건에서 두 가지 측면 모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돌로 쳐 죽여라’는 명령은 사랑과 자비의 모순을 드러내며, 로마 당국과의 충돌을 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여자를 살려주면 법을 묵인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목사님은 우리가 죄를 추상화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죄는 대단히 현실적이고 부정적인 것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여자의 인격은 문제되지 않았고, 그녀는 단순히 노동력으로서의 재산으로 여겨졌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여자를 범하는 것은 도둑질과 같았고, 소유 재산을 범하는 것은 처벌받아야 했습니다. 신명기 24장 1절에 따르면 이혼은 단순히 ‘인연을 끊는 것’으로 축소해석되었습니다.

그 시절 사회는 로마 귀족과 결혼한 사람들, 그리고 실업자와 날품팔이가 많았습니다. 이는 개인의 책임을 넘어서 사회적인 문제로 여겨져야 한다고 목사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패망을 맞이하는 것, 즉 의인이 없다는 것은 몇몇 의인들의 존재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죄 많은 것을 탓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성의 불륜한 생각이 바로 간음이며, 마태복음 25장 7절에서도 마음으로 그 여자를 범하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의 공포적인 존재가 드러나고, 창세기 2장에서는 홀로 있는 인간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결혼은 단순한 법적 계약이 아니라, 복합적이고 공동체적인 삶을 이루는 것이라고 목사님은 강조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결혼을 파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가정의 삶은 너무나 파괴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셨습니다.

간음은 단죄로 통하는 것이 아니라, 단두대 칼날처럼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불안전하고 나약한 존재이며, 도스토예프스키는 감옥 속에서 깊이 있고 아름다운 존재들의 삶을 말하려 했습니다. 우리는 남녀의 참된 공존의 삶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을 통해, 용서받는 죄인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진정한 용서와 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사랑을 따라 살아가기를 소망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날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가 용서받는 삶, 그리고 서로를 용서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아멘. 이 설교를 통해 우리는 간음의 죄에 대한 교훈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 속에서 용서와 회복의 필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모습으로 나아가, 서로를 사랑하고 용서하는 길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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