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의 기적: 믿음의 징표를 찾다

1990년 3월 25일, 고 최성묵 목사님은 "요나의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셨습니다. 본문은 마태복음 16장 14절, 에제키엘 3장 59절, 사도행전 4장 5~12절이었습니다. 이 설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가는 위대한 구원의 순간을 다루며, 사순절 네 번째 주일에 맞춰 진행되었습니다.

목사님은 마태복음에서 기원전 27년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를 설명하며, 4장부터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하기 시작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의 설교 이후 민중들로부터 배척당하셨고, 공생애의 길을 접어든 순간부터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집요한 대결을 강조하며, 민중들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갈망하는 징표를 요구했습니다.

식민지 지배 체제는 수탈과 생존의 위협을 가져왔고, 집권층은 율법을 이데올로기로 삼아 민중의 목을 조이고 있었습니다. 민중은 마치 휴지처럼 구겨진 존재였고, 그들이 바라는 것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였습니다. 메시아 대망은 예수님이었고, 하나님의 나라는 민중의 욕망과 갈증을 씻는 것이었습니다. 경건한 유대인들 중에도 구원을 기다리는 이들이 있었고, 시몬은 예루살렘이 구원받기를 바라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사이파와 사도계파는 각각 율법으로 통치하던 계층과 로마 정권에 붙어 있는 지배층이었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새로운 세상이 오는 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예수를 그들의 고정관념으로 이해하거나 용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가 보통 사람이 아닌 신적인 권위가 뒷받침되고 있다는 사실에 의심을 품었습니다.

민중과 권력층은 예수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민중은 자유와 해방을 요구했고, 권력층은 신적인 확인을 요구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보낸 증거를 확인하여 기득권을 잃을까 두려워했던 세대였습니다. 마가복음 8장 12절에서 바리사이파의 요구에 대해 예수님은 탄식하셨습니다. “오늘은 하나님, 내일은 가이사에게로 가는 세대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없다”는 말씀은 그 시대 사람들의 불신을 드러냅니다. 누가복음 11장 29절에서도 “이 시대가 표징을 구한다고 탄식했다”는 말씀처럼, 예수님은 새로운 시대를 바라보면서 징표를 요구하는 그들에게 답답함을 느끼셨습니다. 예수님 그 자체가 징표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믿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길잡이”라고 장담했지만, 감옥에 갇히자 예수님이 구주(메시아)인지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듣고도 보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문제”라며,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자는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요즘도 대중적인 인기가 있는 곳으로 사람들은 쏠립니다. 그 시대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나의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신앙이 기적을 낳는 것이지, 기적이 신앙을 낳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표적을 능가합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점괘나 부적이 아닌, 살아 있는 표적이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징표를 보여줘도 믿지 않지만, 신앙이 있는 사람은 보여주지 않아도 믿습니다. 부활의 영광을 보고도 믿지 않는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 나라의 징표임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최후의 징표를 보고도 무엇을 망설이겠습니까?

이 설교를 통해 우리는 요나의 기적을 통해 신앙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목사님은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 그 자체가 우리의 믿음의 징표이며, 그의 고난과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깊이 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믿음의 깊이를 더하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기를 결단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기적을 낳고, 그 기적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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