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책임은 아무의 책임도 아니다”… 총체적 무책임에 빠진 국민의힘

국민의힘이 대선 패배 이후 깊은 성찰보다 당권 경쟁과 책임 회피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9일 열린 5시간 넘는 의원총회에서도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의 거취, 당 개혁안, 차기 전당대회 시점을 두고 갑론을박했지만 결론은 없었다. 당 주류인 친윤계는 김 위원장의 개혁안을 자기 정치라 비난하며 사퇴를 요구했고, 비윤계는 왜 대선 책임 없는 김 위원장이 물러나야 하냐며 맞섰다.

 

당의 위기 앞에서 책임을 공유하자는 말은 얼핏 겸허해 보이지만, 실상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태도로 비친다. 이른바 국민의힘판 일억 총참회론이다. 일본의 패전 후 책임자들이 모두의 책임이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했던 과거와 흡사한 모습이다. 영남 중진들이 이끄는 의총 분위기 속에서 잘잘못은 뒤로하고 단결하자는 말이 우세했고, 결국 또다시 무책임의 체계가 작동했다.

 

실제로 국민의힘 내 의총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지만 책임지는 주체는 없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김건희 특검 반대, 김문수 재공천 문제 등 굵직한 결정들이 모두 의총에서 당론으로 결정됐지만,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다. 이번 사태에서도 모두의 책임이라는 말로 패배의 본질은 흐려졌고, 반성 대신 당권 투쟁이 벌어졌다.

 

김용태 위원장이 제안한 전면 쇄신과 당무 감사는 정당한 요구임에도, 친윤계는 오히려 비대위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차기 지도 체제를 두고선 연말까지 비대위 체제를 유지하자는 친윤계와, 7~8월 조기 전대를 주장하는 한동훈계가 충돌하고 있다. 결국 그들의 관심은 민심보다 차기 공천권에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구태정치에 대한 당내 자성의 목소리가 미약하다는 점이다. 일부 초선 의원들이 쇄신을 외쳤지만 다수의 침묵에 묻혔다. 김문수 전 후보는 패배의 당사자임에도 국힘에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 신념이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당의 도덕적 위기를 상징한다.

 

국민은 대선에서 보수 정당에 사실상 해체 명령을 내린 셈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여전히 내부 권력 다툼에 빠져 있고, 변화와 쇄신은 뒷전이다. 무반성·무변화·무쇄신의 3무 정당이 또다시 선거를 치른다면, 그 결과는 더 혹독한 심판일 것이다. 이기적 기득권과 책임 회피가 당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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