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 ‘동양의 지브롤터’가 된 이유와 역사적 맥락

전남 여수에서 쾌속정을 타고 남쪽으로 두 시간 정도 가면 동백나무가 무성한 섬, 거문도를 만날 수 있다. 거문도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유명하며, ‘계곡을 베개 삼는 누각인 침계루(枕溪樓)가 위치한 대흥사와 함께 조선의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이곳은 단순히 경관이 뛰어난 장소일 뿐 아니라, 19세기 말 국제 정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1. 동양의 지브롤터, 거문도

거문도는 동도, 서도, 고도로 구성된 삼각형 형태의 섬으로, 천혜의 항구를 이루고 있다. 이곳은 19세기 말, 제정 러시아의 동북아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영국이 점령한 지역으로, 동양의 지브롤터라 불리기도 했다. 당시 러시아는 부동항 확보를 위해 한반도와 주변 해역을 탐색하고 있었고, 이러한 상황은 영국에게 위협이 되었다.

 

러시아의 남진 정책은 영국의 식민지와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었고, 이로 인해 두 나라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러시아가 동북아로의 진출을 꾀하자, 영국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거문도를 점령하게 되었다.

 

2. 국제 정세의 변동과 조선의 고난

러시아가 남진을 시도하는 동안 조선은 외세의 압박 속에서 정치적 불안정성을 겪고 있었다. 조선의 지배층은 당파 싸움에 골몰하여 외세의 압박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이 연이어 발생하며 조선은 더욱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

 

조선은 자신의 국력을 강화하기 위해 외부의 도움을 필요로 했지만, 지배층의 분열로 인해 그러한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조선은 외세의 간섭과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3. 거문도의 점령과 그 여파

1885, 영국은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거문도를 점령하였다. 이 사건은 조선에 대한 영국의 압박을 더욱 강화하며, 조선은 국제 정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영국은 거문도를 점령한 후, 이를 군사기지로 활용하고 동양의 지브롤터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조선은 영국의 점령을 인정하면서도, 지배층의 무능함과 불안정한 정치 상황으로 인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거문도의 점령은 조선의 외교적 입지를 더욱 약화시켰고, 이는 이후 청일전쟁 및 러일전쟁으로 이어지는 배경이 되었다.

 

4. 조선의 민중과 거문도 주민

거문도 주민들은 영국군과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였다. 이들은 영국의 점령을 통해 선진 문물을 접하고, 농업과 어업의 발전을 이루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당시 조선의 지배층과는 달리, 거문도 주민들은 현실적인 선택을 통해 외세와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발전시켰다.

 

이러한 과정은 조선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지역 사회가 어떻게 적응하고 발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거문도 주민들은 조선의 지배층이 겪고 있는 갈등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하였으며, 그 결과 지역 경제와 문화가 발전하게 되었다.

 

5. 결론

거문도의 역사는 조선이 외세의 압박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려 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영국의 점령은 조선의 정치적 위기를 심화시켰지만, 동시에 지역 주민들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준다. 우리는 과거의 역사에서 배우고, 외부 세력에 의존하지 않는 강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거문도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조선의 역사와 국제 정세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장소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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