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광주비엔날레에서 가장 사랑받은 작품은 엄정순의 ‘코 없는 코끼리’이다. 이 작품은 시각장애 어린이들과 함께 살아 있는 코끼리를 만지고 느끼며 그 형상을 점토로 만들게 한 프로젝트로, 관객들은 대형 코끼리 조형물에 흥미를 느끼며 사진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 작품은 올해 처음 제정된 ‘박서보 예술상’을 수상하며, 91세의 단색화 거장 박서보는 수상자에게 상금 10만 달러를 전달하며 기쁨을 표현했다.
그러나 이 흐뭇한 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박서보 예술상은 제정 첫 해에 폐지되었다. 미술계 일부 그룹과 시민 단체들은 개막식에서 기습적으로 나타나 “광주 정신을 훼손하는 박서보 상을 폐지하라”고 외쳤다. 그들은 박서보가 군부독재 시절 침묵했다는 이유로 상을 반대하며, 비엔날레 측은 “원로 작가를 망신 줄까 걱정돼 폐지를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올해 광주비엔날레는 역대 최고의 관람객 수를 기록하며 찬사를 받았다. 관람객들은 쉽고 재미있으며 따뜻한 작품들에 매료되었고, 정치적 구호가 빠진 자리에는 위트와 성찰이 가득했다. 예술 감독 이숙경은 관객이 작품을 감상하면서 뉴스를 보는 듯하지 않기를 바랐으며, 예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강조했다.
올해 비엔날레의 주제는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로, 이는 5·18민주항쟁 43주년을 맞아 ‘저항’에서 ‘화해’와 ‘용서’로 나아가는 광주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작가 팡록 술랍의 작품은 5·18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장미꽃으로 바꿔 그린 것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박서보 예술상의 폐지는 80년대에 매몰된 자폐적 집단의 선동으로 비춰질 수 있다. 박서보는 한때 전위예술의 선두주자로, 민중미술이 지배하던 80년대 한국 화단에서 현대미술의 방향을 제시한 인물이다. 그의 작품이 수십억 원에 달하는 가격에 거래되면서 예술이 자본의 시녀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김환기, 백남준 등 다른 작가들도 미술상을 만들 수 없다는 주장이 성립된다.
박서보는 시위 소식을 접하고 페이스북에 “어떤 이견도 없는 것보다 훨씬 좋은 현상이다. 역사는 반동하며 발전한다. 하지만 이 주장에는 치열함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예술이 단순히 시각적 경험에 국한되지 않으며, 촉각, 후각, 청각 등 다양한 감각이 함께 작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엄정순 작가의 ‘코 없는 코끼리’ 프로젝트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 우화를 비튼 것으로, 시각이 모든 것을 결정짓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는 예술가들이 단순히 눈으로 본 것만을 진실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을 수용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운다.
결국, 광주비엔날레의 박서보 예술상 폐지는 예술의 정치화와 그로 인한 갈등을 드러내는 사건으로, 예술이 단순한 정치적 도구가 아닌, 다양한 감각과 경험을 통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예술은 단순히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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