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란 무엇일까. 누군가는 도시의 편리함과 번듯한 일상을 말하겠지만, 한국기행의 몇몇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삶의 기준이 드러난다. 그것은 자연 속에서 스스로 선택한 고단함을 견디며 발견하는 조용한 충만함이다.
경북 울진 후포항의 오정환 선장은 대게잡이 경력 30년이 넘는 베테랑이다. 대게 금어기가 풀리는 12월, 그의 하루는 새벽 3시부터 시작된다. 찬 바람을 가르며 출항한 어선 위에서 밤을 새우는 조업은 생계를 위한 싸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겨울 바다만이 주는 특별한 맛의 시작이기도 하다. 조업을 마친 이들이 배 위에서 끓여내는 ‘대게 짜박이’는 대게 육수 하나로 충분히 깊은 맛을 내는 투박하고도 정직한 음식이다.
울진 사람들은 대게를 버리는 법이 없다. 다리가 빠져 상품성이 떨어진 대게는 말려 ‘해각포’로 쓰고, 이 해각포로 육수를 내 만든 대게 국죽은 겨울철 보양식으로 사랑받는다. 장조림, 겉절이까지—대게는 단순한 해산물을 넘어 이 지역 식문화의 핵심 자원이자 정서이다. 겨울의 동해안은 고된 노동의 대가로 돌아오는 이 한 끼 덕분에 따뜻하다.
한편, 강원 인제 곰배령에서도 ‘불편하지만 더없이 낭만적인’ 삶을 택한 부부가 있다. 서울에서 주중을 보내고, 주말이면 눈 덮인 산골 별장으로 떠나는 조성호 씨 부부는 폭설로 고립되기 일쑤인 귀틀집에서 오히려 행복을 찾는다. 수도가 얼어 물을 길어오고, 무거운 문을 들어 올려야만 집에 들어갈 수 있지만, 눈 덮인 자연 속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
이들은 ‘불편함’을 불행이라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서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맞고, 자연의 질서를 따르며 산다. 함박눈이 쏟아진 날, 어린아이처럼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는 부부의 모습은 행복의 본질이 얼마나 단순한지 일깨워준다.
또 다른 사례는 경북 봉화의 산골 오지마을. 젊은 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함께 귀촌한 세 친구는 처음엔 농사일에 서툴렀지만, 실수를 나누고 웃음을 나누며 '함께 사는 법'을 배운다. 수확보다 중요한 건 함께 흘린 땀과 밥상에 오르는 소박한 음식, 그리고 눈 맞추며 웃을 수 있는 동행이다.
이처럼 도시의 삶이 삶의 유일한 정답은 아니다. 바다 위 대게잡이의 거친 손끝에서도, 눈길을 걸어야만 도달하는 귀틀집에서도, 오지마을의 늦깎이 농부들 사이에서도 우리는 행복의 가능성을 본다.
삶의 가치는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달라진다. 편리함이 곧 만족이 되지는 않고, 불편함이 반드시 고통은 아니다. 어떤 삶을 선택하든, 그 안에서 웃을 수 있고 기다릴 무언가가 있다면 그곳이 곧 ‘행복의 자리’가 될 수 있다. 인간의 행복은 외부 조건보다 내면의 기준에 달려 있음을 이들은 조용히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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