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노인 빈곤 문제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전체 노인 중 약 40%가 빈곤층으로 통계에 잡히며, 노년기의 경제적 어려움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많은 노인들이 평생 모은 부동산 자산은 있으나 이를 생활비로 전환하지 못해 ‘집은 있지만 빈털터리’라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심포지엄에서 이 문제에 주목하며 주택연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주택연금은 주택을 담보로 맡기고 매달 일정 금액을 연금처럼 받는 제도로, 노인이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거주를 유지하면서 현금 흐름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한국은행은 55세 이상 유주택자의 약 35~41%가 주택연금에 가입할 경우 연간 약 34조 9천억 원의 현금 유동성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하며, 이는 민간소비 증가와 노인빈곤 완화에 큰 효과를 줄 것으로 기대된다.
주택연금 활성화가 성공하면 노인빈곤율은 최대 5%포인트 낮아지고, 실질 국내총생산(GDP)도 0.5~0.7%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약 34만 명의 노인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개인의 삶의 질 향상뿐 아니라 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정책 방향이다.
하지만 문제는 모든 노인이 자산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2차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 시기를 맞으면서, 충분한 자산이 없는 노인들이 생활비 마련을 위해 자영업에 무리하게 뛰어드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60세 이상 신규 자영업자의 35%가 연 수익 1천만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운수, 음식, 도소매업 등 경기 변동에 취약한 업종에 집중되어 있어 개인과 거시경제 모두에 리스크가 된다.
이창용 총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년 연장과 임금체계의 유연화를 제안했다. 정년을 늘려 고령자가 더 오래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고, 동시에 연공서열 중심 임금체계 대신 직무와 성과 중심으로 바꾸어 고령자와 청년 모두에게 일자리 진입과 유지의 기회를 균형 있게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접근은 ‘풍요 속 빈곤’이라는 한국 노인 사회의 딜레마에 현실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현재 한국은 눈에 보이는 자산은 풍부하지만 정작 노년 생활은 어려운 ‘아이러니’ 상황에 직면해 있다. 자산을 잠자게 둘 것인지, 아니면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깨어나게 할 것인지 선택은 이제 숙제가 됐다. 주택연금 활성화와 함께 고령 일자리 정책의 균형을 맞추는 실질적인 대응이 더 늦기 전에 이뤄져야 할 필요가 크다.
노후의 존엄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관심과 정책적 노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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