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이번에는 “정년 연장도, 주 4.5일제도 갑자기 안 한다”고 했다. 이 말에 많은 국민들은 이렇게 속으로 외쳤다. “어, 갑자기 안 한다고? 그럼 나중에 슬쩍 한다는 거 아냐?”
8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대선후보 초청 간담회에서 이 후보는 재계 관계자들에게 “노사 대화가 필요하다, 갑자기 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뭐, 말은 좋다. 대화하고, 준비하고, 단계적으로 하겠다는데… 어쩐지 익숙하지 않은가?
예전에 공공개혁, 기본소득, 전국민 재난지원금도 그렇게 ‘천천히 하겠다’고 했다가 순식간에 이슈로 띄우더니, 말 바꾸기 논란으로 이어졌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번 간담회에서 손경식 경총 회장은 정년 연장에 대해 “일률적으로 하지 말고 유연하게 해달라”, “주 4.5일제는 기업과 노동자가 알아서 선택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말은 한마디로 “그냥 우리한테 떠넘기지 마세요”라는 뜻이다. 이에 이 후보는 “노사 합의와 업종별 차등 적용이 필요하다”고 맞장구쳤지만, 언제나 그랬듯 말이 아니라 실제가 중요하다.
이재명 후보는 전에도 “기본소득을 바로 다 주겠다는 건 아니고, 실험부터 해보겠다”고 했다가, 어느새 경기도 전역에 1인당 25만 원씩 뿌리며 퍼주기 논란을 일으켰다.
또 “전 국민 재난지원금은 재정 여건을 고려해 검토하겠다”더니, 선거를 앞두고는 “전 국민에게 주자”고 급발진했다. 그 결과, 당내 반발과 정부와의 충돌까지 불렀다.
그러니 이번 ‘정년 연장’이나 ‘주 4.5일제’ 공약도, 말은 “준비된 변화”지만, 실상은 “타이밍만 보다가 밀어붙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특히 “긴급 재정명령으로 할 수는 없다”는 언급은, 안 하겠다는 뜻이라기보다 **“하려면 그렇게도 할 수 있다”**는 불안한 여운을 남긴다.
정년 연장은 그 자체로 민감한 사안이다. 기업 입장에선 인건비 상승, 청년 일자리 잠식, 근속자 구조조정 등의 부담이 크다. 그런데도 ‘정년 늘려주자’는 말이 정치권에서 나올 때마다 마치 노후 보장 패키지처럼 포장된다. 주 4.5일제도 마찬가지다. 일하는 날 줄이는 건 좋지만, 그만큼 임금이나 생산성 보전이 따라오지 않으면 누가 웃고 누가 우는지는 뻔하다.
이 후보는 “산업과 기업마다 다르니 차등을 두자”고 말했지만, 말은 항상 유연해 보인다. 문제는 실행이다. 실제로는 획일적인 제도 적용이나, 포퓰리즘성 입법이 뒤따를 가능성이 높다.
한편, 간담회에서 이 후보는 재계의 규제완화 요청에 대해서도 “현장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도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다. 뭔가 문제 생기면 항상 ‘현장 중심’, ‘유연하게’, ‘사회적 합의’ 운운하다가, 막상 정책은 어느 날 갑자기 결정돼 있고, 나중엔 “이미 추진 중”이라는 말만 남는 식이다.
물론 정치인은 희망을 말해야 하고, 대선 후보는 유권자에게 공약을 내세우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이재명 후보의 스타일을 보면, 너무 자주 말을 바꾸거나 속도를 갑자기 높여 온 전례가 많다. 그래서 “갑자기 안 한다”는 말도, 어쩐지 “지금은 안 하지만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몰라요~”라는 뉘앙스로 들리는 게 문제다.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말은 더 달콤해지고, 정책은 더 그럴듯해진다. 하지만 유권자 입장에선 정책 그 자체보다 그걸 누가,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일관되게 실행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이재명 후보의 공약이 정말로 “사회적 대화 속에서, 단계적으로, 합리적으로” 진행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과거의 이재명 스타일을 떠올려 보면, ‘말은 부드럽게, 실행은 돌직구’인 경우가 많았던 만큼, 유권자들은 이번에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시점이다.
믿고 따라가기엔, 아직 이 후보의 ‘정책 운전 스타일’은 너무 급가속과 급제동이 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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