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동양 철학의 거장 장자가 말하는 ‘혼돈’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그의 작품 『장자(莊子)』에는 기상천외한 존재들이 가득한데, 그중에서도 특히 혼돈이라는 개념이 흥미롭습니다. 혼돈은 단순한 무질서가 아닌, 깊은 의미를 지닌 존재로 묘사됩니다.
장자의 혼돈 이야기는 남해의 신 ‘숙’과 북해의 신 ‘홀’이 중앙의 신 ‘혼돈’의 집에 놀러 가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혼돈은 친구들을 기쁘게 맞이하지만, 숙과 홀은 그에게 자신의 모습과 같은 눈, 코, 입을 뚫어주기로 합니다. 하루에 하나씩 구멍을 뚫어주던 중 마지막 구멍이 뚫린 날, 혼돈은 죽고 말죠. 이 이야기는 혼돈과 질서의 관계를 비극적으로 보여줍니다. 감각이 생기는 순간 혼돈은 사라지고, 질서가 생겨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감각을 통해 세상과 만납니다. 아기들은 냄새로 엄마를 찾고, 커가면서 세계를 넓혀갑니다. 그러나 혼돈은 세상을 만날 감각의 창이 없습니다. 외부 세계와의 경계가 모호한 혼돈은 자아를 형성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혼돈은 ‘흐릿함’으로 표현됩니다. 우리의 감각이 없던 시절, 태아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흔히 ‘혼돈’이라고 하면 무질서를 떠올리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장자가 말하는 혼돈은 오히려 친절한 존재입니다. 혼돈은 외부 세계를 만나지 못해 생기는 상태이며, 우리가 깨어 있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혼돈은 사라집니다. 반대로 눈을 감으면 혼돈은 다시 살아납니다. 장자는 우리 마음속을 바다에 비유하며, 혼돈이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합니다. 혼돈은 인간의 정수이자 본질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창의성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수량화하는 관리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창의성은 혼돈의 자식이며, 감각이 없는 상태에서 태어납니다. 그러나 관리 사회는 이러한 혼돈에 구멍을 뚫으려 하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비극은 혼돈이 질서로 변하면 창의성이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창의적인 혼돈이 죽어가는 현실을 우리는 마주하고 있습니다.
조선 중기 이후 서양 학문과 사상이 조선에 유입되면서 새로운 혼돈이 생겨났습니다. 이때 서학은 진보적 사상가들에 의해 연구되고 수용되었습니다. 이수광, 이익, 안정복과 같은 학자들은 새로운 사상과 기술을 도입하며 조선 사회에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질서와 충돌하며 혼돈을 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장자가 말하는 혼돈은 단순한 무질서가 아니라, 질서와 창의성, 자아 형성, 내면 탐구, 변화의 상징으로서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며, 혼돈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이 개인과 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장자의 혼돈은 단순한 무질서가 아닌, 깊은 의미를 지닌 개념입니다. 우리의 감각과 자아는 혼돈 속에서 형성되며, 창의성은 이 혼돈에서 태어납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이러한 혼돈을 이해하지 못하고 관리하려 합니다. 우리가 혼돈을 부정하거나 없애려 하지 말고,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해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은 장자가 말하는 혼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러분의 의견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
혼돈 속에서 질서와 창의성을 찾는 여정은 우리 삶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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