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정부 시절, 군부독재 시기를 거치며 투옥·탄압을 겪은 이들을 대상으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특히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포함해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수많은 인사들이 이 제도를 통해 보상금을 수령했고, 이는 한국 사회의 과거 청산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받는다.
당시 수많은 운동권 출신 정치인과 시민운동가들이 이 보상 제도의 수혜자가 되었다.
이들은 군사정권 하에서 겪은 옥고와 탄압에 대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경제적인 보상도 받으며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다.
실제로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 및 가족에게는 별도의 지원책도 마련되어, 제도적 보호와 혜택이 뒤따랐다.
그러나 이 제도가 시행된 이후 유독 눈에 띄는 한 인물이 있었다. 1970년대 노동운동의 상징으로 꼽히며, 두 차례에 걸쳐 장기간 투옥을 경험했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다. 김문수는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재학 중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되었고, 이후에도 노동운동에 투신하면서 다시 감옥에 수감되는 등 굵직한 민주화 운동의 전면에 섰던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 한 번도 민주화 보상금을 신청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신청하라는 권유를 받았음에도 거절했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김문수는 이 보상 제도 자체에 대해 “민주화운동은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다”라는 철학적 신념을 드러냈다. 그는 “민주화운동은 국민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당연한 의무였고, 그것으로 돈을 받는 것은 양심에 어긋난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그는 본인이 감내한 고통이 경제적 보상으로 환산될 수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정치인으로 성공한 이후에도 그가 민주화 보상금을 받지 않은 사실은 오히려 그를 상징적인 인물로 만들었다. 특히 여야를 넘나들며 보상금을 수령한 이들과는 뚜렷이 다른 행보로, 그에 대한 긍정적 재조명도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 김문수는 국회의원과 지사 시절, 자신이 겪은 운동권 시절을 자랑삼기보다는 오히려 반성적으로 회고하는 태도를 보였다.
“과거의 운동이 전체주의적 사고에 매몰된 부분이 있었다”며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한 그의 발언은, 민주화운동 세력 내부에서조차 주목을 받았다. 민주화운동의 공적은 공유하되, 성찰은 개인의 몫이라는 입장이기도 했다.
또한 김문수는 노동운동가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에 뛰어들었으나, 이후 자유시장경제와 보수 정치철학을 수용하는 독특한 길을 걸었다. 과거 운동권 동료들과는 다른 선택을 하면서도, 그는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를 여전히 존중한다고 밝혔다. 이 점에서 그는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 중에서도 이례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렇다면 왜 많은 이들이 이 보상금을 수령하면서도 김문수만은 이를 거절했을까?
그의 삶을 돌아보면 단순한 자존심이나 고집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오히려 그는 민주화운동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했고, 정치인의 삶과 별개로 그 시절의 기억을 경제적 이득과 분리하려 했다는 점에서 독특한 윤리의식을 보여준 셈이다.
결국 김문수의 선택은 개인적 결단이지만, 그것이 던지는 의미는 크다.
민주화운동의 역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명예를 회복하고 보상을 받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이를 거부하며 그 시대의 신념과 고통을 개인적으로 간직하겠다는 결심 역시 존중받아야 할 선택지다. 김문수는 바로 그 어려운 길을 묵묵히 걸어간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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