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어 재테크'로 쌓은 유대인 자본, 17세기 은행·주식회사 밑천 됐다

유대인의 역사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은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특히 '청어 재테크'로 불리는 절임 청어 산업은 근대 자본주의의 기초를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유대인들이 어떻게 청어 산업을 통해 자본을 축적하고, 그 결과 17세기 은행과 주식회사의 발전에 기여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유대인의 이주와 청어 산업의 태동
1492년 스페인에서 추방당한 유대인 중 많은 이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했습니다. 이들은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의 천일염을 독점적으로 수입하며 절임 청어 산업을 주도하였습니다. 청어 잡이와 포경 산업의 호황은 조선업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네덜란드는 국제 해운 업계를 평정하며 물류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됩니다.

청어 산업과 자본주의의 시작
네덜란드에서 청어는 단순한 식량을 넘어 경제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당시 인구의 30%가 청어 잡이에 종사하며, 절임 청어의 생산량이 급증했습니다. 유대인 상인들은 소금 유통의 독점 체제를 구축해 절임 청어 산업을 장악하고, 이를 통해 유럽 전역에 청어를 공급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절임 청어의 생산량은 획기적으로 증가하고, 유대인 상인들은 독보적인 경쟁력을 확보합니다.

해운업의 발전과 자본 축적
청어 잡이와 포경 산업의 호황은 자연스럽게 조선업 발전으로 이어졌습니다. 17세기에는 네덜란드 선박이 2000척을 넘었고, 이들 중 대부분은 청어 잡이 어선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해운업에서 화물 운송비를 대폭 낮추며 경쟁력을 강화했고, 이는 동양으로의 원양 항해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경제적 배경 속에서,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설립됩니다. 이는 근대 최초의 주식회사로, 유대인들은 주식회사 개념을 도입하여 자본을 모았습니다. 이로써 동인도회사는 대규모 경영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됩니다.

중앙은행과 증권거래소의 탄생
네덜란드에서의 경제 발전은 단순히 해운업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상업과 금융의 발전은 중앙은행과 증권거래소 설립으로 이어졌습니다. 1609년에 설립된 암스테르담은행은 화폐 통일을 이루며 금융 거래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이후 1611년에는 증권거래소가 세워져 주식 거래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이러한 발전은 자본주의의 씨앗이 네덜란드에서 피어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청어와 자본주의의 꽃
청어 산업은 조선업과 해운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며 중상주의를 활짝 꽃피웠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1776년에 펴낸 ‘국부론’에서 네덜란드가 영국보다 훨씬 부유한 나라라고 언급했습니다. 이는 청어 산업이 유대인 자본의 축적과 근대 경제 체제의 발전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1492년의 역사적 의미
1492년은 중세와 근대의 분기점이 되는 해로, 이슬람을 몰아내고 기독교 왕국이 세워지며 유대인 추방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유대인의 추방은 네덜란드에서 중상주의가 꽃을 피우고 자본주의의 씨앗이 잉태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은 오늘날 세계 경제 질서의 기초를 형성하였습니다.

결론
유대인들은 청어 산업을 통해 자본주의의 씨앗을 뿌리고, 근대 경제 체제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경제적 성공을 넘어서, 세계 경제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1492년의 추방은 유대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으며, 그 결과 오늘날의 글로벌 경제 시스템의 기초가 다져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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