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의 기원: 바람족과 흉노의 역사

신시(神市) 배달한국 제5세 태우의(太虞儀) 천황의 막내 황자, 태호복희(太虞伏羲)의 후손들은 중국으로 이주하여 큰 세력을 이루며 중국 고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이들은 기마족(騎馬族) 출신으로, 북쪽이나 서쪽의 초원생활을 선택한 풍이(風夷)족으로 알려져 있으며, 중국인들은 이들을 흉노(匈奴)라고 부른다. 서양에서는 이들을 훈(Huns)이라 하며, 이들의 어근은 "Fn"으로 일치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흉노전에서는 흉노족이 요(堯) 임검 이전부터 중국 북방에서 이목(移牧)하며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태호복희의 풍족(風族)은 한때 "스키타이"라고도 불리며, 중앙아시아의 대초원을 휩쓸며 신선도(神仙道)를 신봉하고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들은 태양신을 숭배하며, 천손강림(天孫降臨)의 의식을 거행할 때 백마(白馬)를 제물로 바쳤다.

우리나라의 제일 성씨인 김(金)씨의 유래는 바람족(풍이-風夷)의 후손인 휴도왕(休屠王)의 태자 금일제(金日帝)에서 시작된다. 사마천의 기록에 따르면, 금일제의 아버지 휴도왕은 현재의 서안(西安) 북쪽 지역에서 살고 있었으며, 당시 곤사왕(昆邪王)과 함께 하서지방을 다스렸다. B.C 128~117년, 곤사왕은 흉노의 천자(天子)인 선우(單于)의 질책을 두려워하여 금일제의 아버지를 설득해 투항하려 했으나, 휴도왕은 이를 거부하고 전쟁 준비를 하였다.

결국 곤사왕은 휴도왕을 꾀어내 죽이고, 4만명의 무리와 함께 한무제가 보낸 대장군 곽거병(郭去病)에게 항복하게 된다. 금일제는 14세의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 알씨(閼氏)와 동생 윤(倫)과 함께 한관에게 몰수되어 황문(黃門)으로 옮겨졌다. 이때 한무제(漢武帝)에 의해 마감(馬監)으로 승진하고, 시중부마도위(侍中附馬都衛) 광록대부(光祿大夫)를 거쳐 상장(上將)이 되었다.

금일제는 한무제를 암살하려는 자를 체포한 공로로 "투후"라는 벼슬을 받고, 한무제로부터 금(金)이라는 성(姓)을 받았다. 금일제의 아버지 휴도왕이 하늘에 제사할 때 금인상(金人像)을 만들어 모셨던 이유로 금(金)씨의 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금일제의 성씨를 "금"이 아닌 "김"으로 발음해야 할 이유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금일제의 아들 금상(金賞)도 투후 벼슬에 오르지만 일찍 죽고, 원제(元帝) 초에 금일제의 차남 금건(金建)의 손자 금당(金當)이 투후로 봉해져 금일제의 뒤를 잇게 된다. 이후 금당의 아들 금성(金星)까지 투후를 계승하며, 5대 손인 금성까지 제후국의 왕 자격으로 궁중을 돌보며 막강한 세력을 펼쳤다.

이처럼 김씨의 기원은 바람족과 흉노의 역사와 깊은 연관이 있으며, 그들의 전통과 문화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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