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벗고 앉아라: 진정한 회복을 향한 결단

1990년 10월, 고 최성묵 목사님은 "옷을 벗고 앉아라"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셨습니다. 본문은 히브리서 11장 17절과 열왕기하 5장 1~14절이었습니다. 이날 설교에서는 시리아의 나아만 장군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시리아의 수호신과 같은 부러운 인물이었지만, 동시에 '문둥병 환자'라는 치명적인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문둥병은 신의 저주를 받은 병으로 여겨졌습니다.

현대인들은 완벽한 문명과 문화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의술, 교통, 문화, 레저 등 다양한 혜택이 있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나의 존재와 속으로 느끼는 나의 존재는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고독, 고통, 불안 등으로 가득 차 있었고, 분칠한 미소 뒤에는 시커먼 장막이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본훼퍼와 사르트르는 “신은 죽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삶에 지쳐 죽어가는 인간들이 살고 있는 현대 문명의 극한 상황을 설명하는 말이었습니다. “이지러진 고통을 해소할 길이 없을까?” 나아만 장군은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하녀에게 물었습니다. 그녀는 “이스라엘 예언자를 만나기만 해도 문둥병은 고쳐질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엘리사는 나아만 장군을 영접하지 않았고, 그의 체면과 위신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요르단강의 흑탕물에서 일곱 번 목욕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알몸을 드러내고, 창피와 조롱 속에서도 인내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그는 어린아이의 몸과 같이 회복되었습니다. 이러한 기적은 하나님 앞에 자기 몸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결과였습니다. 그렇지 않을 때, 비극이 따랐습니다. 병이 나면 몸은 쇠약해지고 결국 이 세상과 결별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몰트만은 “회개는 곧 탈출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에게 벌거숭이 자아를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아만 장군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죽음의 병을 앓고 있는 우리에게는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추하고 병든 자아를 드러내고, 모든 것을 맡기는 결단이 요구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결단만이 남았습니다. 옷을 벗고 하늘을 바라보라는 메시지가 전해졌습니다. 우리는 거짓된 허상을 더욱 보존하고, 그것이 자아인양 선전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적나라한 우리를 원하셨습니다. 우리의 적나라함과 죄 속에 쌓인 모습을 하나님께 드러내고, 그 모든 허물을 하나님께 맡기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멘.

이 설교는 고대사와 관련된 여러 문헌에서도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사기》에서는 인간의 고통과 회복의 과정을 탐구하며, 일본의 고대 문헌인 《고사기》에서도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회복의 필요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의 역사학자 이병도는 고대 한국 사회에서도 인간의 고통과 회복이 중요한 주제였다고 언급했습니다. 이러한 고대 문헌들은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회복의 과정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결국, 우리는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할 필요성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우리의 결단이 진정한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고, 적나라한 자아를 드러내는 용기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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