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와 산업이 탈정치화된 한국, 정직한 비전만이 국가를 살린다.

한국은 지금 산업과 외교의 현장에서 기묘한 괴리를 마주하고 있다.

기업은 베트남에서 산유국의 꿈을 현실화하며 하루 2만 배럴 생산 가능성을 열었지만, 정작 정부는 이를 실질적 에너지 안보 전략으로 연결하지 못한다.

일본은 K-팝 유통망을 장악하며 한류의 이익을 가져가고, 미국은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통해 안보와 산업을 결합한 글로벌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한국은 이 흐름에서 조용히 뒤처지고 있다. 문제는 이 현상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역사적으로 외교와 산업, 그리고 정치의 유기적 결합은 국력의 핵심이었다.

명나라 말기의 송응창(宋應昌)은 왜구의 침략을 군사적 방어만이 아닌 무역과 제도의 조정으로 해결하려 했고, 조선의 영조는 백성을 위한 통치의 정당성을 탕평책이라는 현실적 제도로 실현하려 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정치는 그런 현실성과 실용성, 그리고 책임 의식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2024년 말부터 진행된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협상은 단순한 기업 인수 문제가 아니다.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일본제철은 안보에 위협이 없다며 조건부 승인을 내렸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 인수로 7만 개의 일자리가 생긴다며 이를 정치적 레버리지로 활용했다. 유럽 역시 자국 기업 보호와 공급망 재편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 없이는 주권도 없다고 단언한 바 있다.

 

반면, 한국은 대외정책에서 행정 절차화에 갇혀 있다. 대통령의 외교적 레토릭은 구체적 실천보다 국내 정치용에 가깝고, 산업 정책은 기업의 자율에만 의존하고 있다. 해운 운임지수가 미중 관세 휴전으로 3주 연속 상승하는 동안, 한국은 운임 담합 문제로 자국 해운사를 제재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외교는 비전이 아닌 반사적 대응으로, 산업은 전략이 아닌 시장 논리에만 위임된 것이다.

 

정치가 이런 흐름을 읽고 선도하는 대신, TV토론장은 방탄 입법이나 친중이라는 공허한 프레임 싸움으로 가득 찼다. 이재명 후보조차 "국가 미래보다 비방이 많아졌다"고 말했을 정도다. 김문수 후보는 단일화에 대해 어제 안 되던 게 오늘 되는 게 정치라 했지만, 국민은 이제 그런 즉흥성을 감내할 여유가 없다. 선거는 가능성과 비전을 보고 미래를 위임하는 행위이지, 정당 간 파워게임의 도구가 아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허구는 인류를 결속시키는 힘이지만, 현실을 외면하는 허구는 붕괴를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지금의 한국 정치가 보여주는 허구적 약속은 현실과 유리되어 있으며, 국민은 이를 점점 더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과거 유럽의 수많은 군주가 정의가 없는 권력은 폭력일 뿐이라는 진리를 외면했듯, 정직한 비전 없는 권력은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이제 국민은 판단해야 한다. 베트남에서 이룬 산유국의 꿈은 공허한 수사로가 아닌, 전략과 정책이 뒷받침될 때만 진정한 성과로 귀결된다. K-팝의 열풍도 국내 유통망과 저작권 보호가 없다면 타국의 수익만 확대시킬 뿐이다. 산업은 멈추지 않지만, 국가는 방향성을 잃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외쳐야 한다. 거짓 약속이나 조작된 이미지가 아닌, 정직한 실적과 가능성 있는 비전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선거는 쇼가 아니라 계약이며, 이 계약은 국민 모두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시간 낭비를 감내할 수 없다. 가능성의 리더가 아니라, 성실한 설계자를 선택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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