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철이 마침내 미국의 상징적 철강 기업 US스틸 인수를 완료했다. 이 인수는 단순한 기업 간 매각을 넘어 일본이 제조업 글로벌 리더십을 되찾기 위한 대담한 전략적 움직임이자, 미국이 안보와 산업 경쟁력이라는 두 가지 기준을 놓치지 않기 위한 절충의 산물이다. 반면 한국은 같은 날 이재명 대통령이 울산에서 AI 데이터센터 출범식에 참석하며 ‘AI 3대 강국 도약’을 선언했으나, 과연 실현 가능한 비전인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이번 인수는 약 19조4000억 원에 달하는 대형 거래로, 일본제철이 US스틸을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면서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폐지까지 완료됐다. 그러나 인수는 전면적 소유권 이전이 아닌, 조건부 통제 형태다. 미국 정부는 일본제철에 대해 ‘황금주(golden share)’를 보유하고, CEO 및 CFO를 미국 국적자로 제한했으며, 생산거점 이전, 사명 변경 등 주요 경영 사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했다. 이는 경제적 거래이면서 동시에 철저한 안보 기반 계약이다.
이는 단순히 철강 산업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일본제철의 인수 전략은 미국 내 생산 인프라 확보, 현지 고용 유지, 그리고 고부가가치 제품의 공급까지 염두에 둔 종합적 포석이다. 결국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제조업의 글로벌 복귀를 본격화하고 있는 셈이며, 이를 미국이라는 전략 시장에서 실현시켰다는 데 의미가 있다. 미국도 이를 ‘역사적 합의’로 평가하며, 자국 안보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상태에서 외국 자본을 수용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이재명 대통령이 울산에 대규모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한다고 발표했다. 아마존과 SK가 협력하여 100MW 규모의 AI 전용 데이터센터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AI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이다. 대통령은 “AI 고속도로를 구축하겠다”며 산업 전환과 지방 균형발전의 상징적 사업으로 이 프로젝트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 비전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기술력, 인재, 데이터 인프라, 그리고 국제적 파트너십이라는 네 축이 안정적으로 구축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의 AI 생태계는 글로벌 기준에서 성숙 단계에 진입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과 비교하면 자체 기술력과 연구자 생태계가 취약하며, 산업별 AI 적용도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 게다가 반도체, 배터리 등 기존 산업 중심의 성장 패턴에서 과감한 전환을 꾀하는 데에는 정책 연속성과 산업 리더십이 필수적이다. 대통령의 ‘속도감 있는 추진’ 발언은 의지는 엿보이지만, 그만큼 촘촘한 실행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영역이다.
이번 일본제철-US스틸 사례에서 주목할 점은, 국가 경쟁력 회복을 위한 민간 주도의 거대한 산업 전략이 정부의 제도적 협조 속에서 추진되었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AI 산업은 아직까지도 정부 주도, 규제 혁신, 일부 대기업 중심 모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산업 구조와 자본 배분이 과거와 다르다면, 정책의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AI라는 미래 기술에 진심으로 뛰어들고 싶다면, 교육 시스템과 데이터 정책, 인재 유입 구조까지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일본은 미국을 통해 제조업 세계무대 복귀를 노리고, 한국은 AI를 통해 미래 성장동력을 모색하고 있다. 두 국가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국가의 산업 미래’를 설계하고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국가의 전략과 기업의 실행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기술을 강조하거나, 자본을 유치하는 것만으로는 미래 산업을 선도할 수 없다. 전략적 통찰력과 민관 협업, 그리고 글로벌 경쟁에 대한 현실적 감각이 절실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AI 정책이 진정 국가의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이 바로 그 전환점이어야 한다. 일본의 철강 전략에서 배워야 할 것은 기술만이 아니라, 산업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와 국제 질서 속에서의 실용적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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