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부산의 민주화 운동은 부림사건과 부산미문화원 사건으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부교회는 또 다른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9월부터 시작된 중부교회 내분사태는 교회와 신도들, 그리고 외부의 압력이 얽혀 복잡한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중부교회 내분의 전조로는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 당국의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 인해 교인들이 교회 출석을 꺼리게 되었습니다. 정부기관의 인사들이 교인들을 감시하고 성분을 분석하는 상황에서, 큰 사업을 하는 교인들은 교회 출입을 기피했습니다. 신이건 씨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당신은 동생이 군의 요직에 있으면서 문제의 교회에 출석하고 있으니 불이익이 가더라도 후회는 하지 마십시오.”라는 협박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이영우 씨는 부산은행 대리로 근무 중 이유 없이 서울지점으로 전보되었고, 이러한 인사 발령은 당시 정보기관의 압박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둘째, 보수교단의 공격이 있었습니다. 1981년 11월, 한국기독교회 정화위원회 위원장 이확실 목사는 ‘증언 1’이라는 유인물을 배포하며 중부교회를 비난했습니다. 그는 중부교회가 인권과 민주화를 주장하는 소수의 무리들에 의해 민중을 팔아먹는 것이라며 교계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비난은 최성묵 목사와 그의 지지자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1982년 9월 5일, 중부교회 회계 집사 최성이 최성묵 목사를 비난하는 유인물을 배포하고 퇴진을 요구했습니다.
그는 최성묵이 부산신학교 교수로 겸직하며 교회보다 학교에 더 충성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최성의 유인물은 교회 내의 분열을 촉발했으며, 많은 교인들이 이를 두고 논란을 벌였습니다.
최성묵 목사는 청년회와의 갈등이 심화되자, 9월 10일 설교 중 다수 청년들을 군대 귀신에 비유하며 비난했습니다.
이는 교회 내의 갈등을 더욱 부추기며, 최성묵과 청년들 간의 관계를 악화시켰습니다.
청년들은 최성 집사의 유인물과 최성묵의 행동을 비판하며 사퇴를 요구하는 여러 차례의 유인물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교회 청년이자 동료였던 임실근 집사는 중재를 위해 당사자들을 만나 설득하고 노력했으나, 모두가 허사였다. 최성묵은 대화와 타협의 여지가 있었던 초기 상황에서 점차 갈등이 심화되면서 서로를 신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수 청년들은 최성묵의 민주화 운동 지도자로서의 신뢰와 기대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가 개인적 정치적 야망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최성묵이 과거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기여에도 불구하고, 현실 정치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특히, 일부 청년들은 최성묵이 부림사건과 같은 시국 사건에 연루된 학생들의 옥바라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최성묵이 감옥에 가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그가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고 성토했습니다. 이에 대해 박상도는 당시 민주화 운동의 상황을 설명하며, 최성묵과 같은 인물들이 구속되지 않은 이유를 정보기관의 전략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는 “당국은 하부 조직의 활동에 대해 눈에 띄지 않게 하기를 원한다”며, 최성묵과 같은 인물들이 잡히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결국, 중부교회 내분사태는 단순한 교회 내 갈등을 넘어, 민주화 운동의 복잡한 이해 관계와 갈등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습니다. 최성묵과 청년들 간의 갈등은 서로의 신뢰를 잃게 만들었고, 이는 민주화 운동의 방향성과 목표에 대한 논의를 촉발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이후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긴 여정에서 중요한 교훈으로 남아 있습니다.
차성환 지음(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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