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항쟁이 6.29선언으로 마무리되자, 전국의 노동현장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부산에서는 부산민주노동자투쟁위원회와 부산민주시민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노동조합 결성을 지원하는 등 활발한 활동이 이어졌습니다. 7월 초부터 다양한 노동자들이 국본 사무실로 몰려와 노조 설립과 투쟁 방향에 대한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노동운동가들은 이러한 요청에 응답하며 직접 현장으로 달려가 조합 결성을 도왔고, 이 움직임은 7, 8월의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제임스 릴리 주한 미국 대사가 부산을 방문하여 중부교회를 찾았습니다. 최성묵은 릴리 대사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부산 시민 중에는 민주화를 거부하는 세력을 돕는 미국의 태도에 격분해 미국인을 보면 테러를 불사할 각오로 품에 칼을 품고 다니는 반미 세력이 천명도 넘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러한 발언은 당시 부산 시민들의 강한 저항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1987년 하반기, 6월항쟁의 승리로 군부독재를 종식시킬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었던 많은 국민들은 대통령선거에서 양 김 씨의 분열과 군부정권의 재집권 가능성 앞에서 또 한 번 좌절을 경험했습니다. 최성묵은 평화민주당의 창당이 야권 분열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며, 박상도와 함께 김대중과 김영삼 두 인물을 만나 국민의 염원은 야권 단합임을 간곡히 호소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성묵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지역을 돌며 군정 종식을 국민들에게 호소했습니다. 그는 김영삼 지지자들이 주최한 집회나 김대중 지지자들이 주최한 집회 모두에서 연설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또한, 부정선거를 방지하기 위해 민주쟁취 국민운동 공명선거감시 부산본부장을 맡아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분열된 야당은 군부정권에 맞설 수 없었습니다. 최성묵은 선거 결과를 방송하는 텔레비전을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1987년 겨울, 부산 지역 운동단체 실무자들을 범어사 근처 술집으로 초대한 최성묵은 위로의 술을 대접했습니다. 참석했던 최인순은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통해 최성묵의 진솔한 모습을 회상합니다. "다들 떠들썩한 가운데, 저는 우울한 심사에 빠져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이 사람 저 사람을 잡고 사랑을 나누고 계셨습니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저를 조용하다고 지적하자, 목사님이 술잔을 들고 제 옆자리로 오셨습니다. '어이, 티나, 왜 그리 조용하냐?' 하셨습니다. 저는 싸늘하게 '어이, 늙은 귀신, 시끄럽다. 조용히 해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호탕하게 웃으며 '늙은 귀신? 하하하하. 그래, 그래. 늙은 귀신 조용히 해야지.'라고 하셨습니다."
이 일화는 최성묵이 독특하게 사용하던 언어를 보여줍니다. 그는 가까운 사람들을 '귀신'이라고 부르며 친근함을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친근한 표현은 최성묵과 그의 주변인들 사이에서만 통하는 특별한 언어였습니다.
군사정권 시기, 최성묵이 민주화운동에 몰두하는 동안 그의 아내 김순이는 교회 일과 함께 수시로 발생하는 연행 사태에 대처하느라 힘들었습니다. 경찰서에 연행되면 면회 갈 때 들고 갈 옷 보따리를 항상 준비해 두었고, 심지어 사위까지 운동권 목사였기 때문에 남편과 사위가 번갈아 경찰서를 드나드는 상황에서 가정과 아이들을 어떻게 돌봤는지 걱정스러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최성묵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투쟁을 넘어, 한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 남아 있습니다. 그의 유머와 인간미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민주화의 길을 걸어가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영감을 주었습니다.
차성환 지음(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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