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묵은 YMCA 총무직을 사퇴한 후 새로운 일터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 즈음, 용두산공원 앞에 있는 한 기계공고에서 최성묵을 교장으로 초빙하는 제안이 들어왔다. 이사장은 고령의 노인으로, 자신을 대신해 학교 전반을 관리해 줄 사람을 찾고 있었고, 최성묵을 추천받아 직접 면담하게 되었다. 면담에서 이사장은 최성묵에게 교장직을 맡아 줄 것을 제의하며 괴정에 있는 사택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순이도 이사장과의 면담 결과를 듣고 마음에 들어했고, 부부는 그 제안을 수락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어느 날 김순이가 대청동 집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백발의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찾아왔다. 그는 자신이 중부교회 장로라고 소개하며, 최성묵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그가 바로 캐나다에서 지원을 받아 중부교회를 설립한 구위경 장로였다. 구 장로는 최성묵이 성경공부를 지도할 때 그를 눈여겨보고, 심응섭 목사의 후임으로 초빙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구 장로는 기도하자고 제안했고, 기도가 시작되자 그 간절함에 부부는 눈물을 흘렸다. 구 장로는 하나님이 중부교회를 위해 최성묵과 같은 목자를 보내주신 것에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다. 그런 분위기에 압도된 최성묵은 중부교회로 갈 수 없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김순이는 고령의 노인이 그렇게 간절히 부탁하는 상황에서 제안을 거절하면 하느님의 벌을 받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결국 부부는 최성묵의 중부교회 임명을 수락하기로 했다. 원래 최성묵은 젊을 때는 학생운동에 헌신하고, 목회는 나이가 많아졌을 때 무보수로 봉사할 생각이었지만, 이 상황에서 생각이 바뀌었다.
1976년 1월, YMCA 대학생부는 51명의 청년 학생이 참가한 겨울행군대회를 개최했다. YMCA 대학생부는 매년 여름과 겨울에 각각 내륙과 제주도에서 열흘 코스의 행군대회를 운영하고 있었다. 오전과 오후에 각 5km씩 하루 10km를 걷고, 저녁에는 민박을 하며 학생들에게 과제를 주고 토론하는 형식이었다. 프로그램의 책임자는 박상도였고, 최성묵도 동행했다.
행군 중 어느 날 저녁, 서귀포의 한 선술집에서 학생들과 함께 모인 자리에서 최성묵은 술잔을 들고 “유신 반대!”를 외쳤다. 이 구호는 술집 안에 있던 사람들의 호응을 얻어, 마치 유신 반대 집회와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술집 주인은 무료로 술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행군대회를 마치고 돌아온 다음 달, ‘책방골목’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최성묵의 중부교회 전도사 임명과 YMCA 활동은 그가 사회적 변화와 청년들의 권익을 위해 헌신하는 과정이었다. 그는 학생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불의를 외면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보였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단순한 개인의 활동을 넘어,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발전에 기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최성묵의 이야기는 그가 어떻게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헌신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남을 것이다.
차성환 지음(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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