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4월, 최성묵은 부산 YMCA 총무로 취임하게 되었다. 그는 미국문화원에서 1년 반 동안 일한 뒤 안정된 직장을 찾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진보적 성향은 부산 YMCA 이사회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숨은 노력이 필요했다. 당시 이사회는 보수와 진보 간의 치열한 정치적 갈등 속에 있었고, 최성묵의 지명이 가까스로 가결되는 과정은 여러 사람의 설득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취임 후 최성묵은 YMCA의 여러 사업에 열성적으로 몰두했다. 시민논단 프로그램을 통해 부산 시민들의 주요 관심사를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1972년 4월 YMCA 대학생회(영봉 대학-Y, 초대 회장 임실근)를 조직하여 젊은이들의 활동을 지원했다. 당시 유신체제의 압박 속에서 많은 대학생들이 연합서클을 해체해야 했고, 최성묵은 미국문화원에서 활동하던 서클들이 YMCA로 적을 옮길 수 있도록 이끌었다. 이후 1974년 김인환 간사의 지도로 대학-Y 연합회(초대 회장, 임실근)가 구성되었다.
최성묵의 지도력은 세부적인 문제에 개입하기보다는 학생들의 자율적 활동을 장려하고 보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YMCA 대학부는 이화여대와 함께 지역 걸인 및 불우 청소년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부산 지역 대학생 협의회를 결성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했다. 특히 최성묵은 젊은이들이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뜰 수 있도록 이끌었고, 권위적인 방식이 아닌 친구처럼 다가가며 소통했다.
그는 청년들과 함께 술집에서 담배를 피우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이러한 모습은 당시 목사로서 논란이 될 수 있었지만, 최성묵은 신념에 따라 행동했다. 그는 젊은이들과 함께 어울리며 그들이 겪는 문제에 귀 기울였고, 그들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1973년 8월에는 김대중 납치 사건이 일어나고, 10월 2일 서울대학교에서 최초의 유신 반대 학생 시위가 일어났다. 이 시위는 곧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겨울에는 유신헌법 개정을 위한 청원 운동이 시작되었다. 최성묵은 이러한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부산 YMCA에서의 활동을 통해 지역 사회의 변화에도 기여하고자 했다.
그러나 최성묵의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부산 YMCA 이사회는 그가 점점 더 부담스러워졌고, 중앙정보부는 부산인권선교협의회의 활동을 문제 삼아 사퇴 압력을 가하게 되었다. 결국 1975년 8월, 최성묵은 YMCA 총무직을 사퇴하게 되었다.
그 기간 동안 최성묵의 경제형편은 어려웠다. 월급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김순이는 남편의 월급을 확인하기 위해 YMCA에 찾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김순이는 큰 불평 없이 내핍 생활을 이어갔다. 그녀는 매일 저녁 12시 직전에 돌아오는 남편을 위해 뜨거운 밥과 국을 준비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김순이는 최성묵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스스로 분석하는 습관을 기르게 되었고, 그날 밤 남편에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충고하기도 했다. 최성묵은 아내의 통찰력이 정확하다는 것을 느끼며 “당신은 귀신이다”라며 농담을 하곤 했다. 이처럼 부부 간의 대화는 그들의 관계를 더욱 깊게 해주었고, 최성묵은 출장 중에도 매일 아내에게 엽서를 보내며 “당신의 默”이라는 문구로 사랑을 표현했다.
최성묵의 부산 YMCA 총무 재임 기간은 그가 사회적 부조리와 불의를 외면하지 않고, 청년들과 함께하는 삶을 선택한 여정이었다. 그는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헌신하였고, 그 과정에서 가족과의 사랑도 깊어졌다. 그의 이야기는 희생과 사랑, 그리고 공동체를 위한 헌신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며,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례로 남을 것이다.
차성환 지음(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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