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묵 목사님과 중부교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 쉼터

선생님께서 담임목사로 계시던 중부교회는 정말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암울했던 유신과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지식인들과 청년들은 시국을 논의하고 고민을 표출할 수 있는 장소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중부교회는 최성묵 목사님을 중심으로 전국의 청년들과 기독교 장로교회 교인뿐 아니라, 예장, 고신, 감리교 등 다른 교파의 지도자들, 타 종교의 성직자들, 심지어 무신론자들까지도 모여 선생님과의 친교를 나누고 대화를 통해 용기와 안식을 찾았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이기택, 박관용 등 당시 야권의 정치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정의에 반하는 판결에 맞서 싸우던 김광일, 노무현, 이흥록 변호사, 그리고 시대의 아픔을 함께한 지성인들인 함석헌, 김정준, 안병무, 문익환, 문동환, 서남동, 홍근수 목사, 한완상 교수, 김동수 교수, 송기현 신부, 차선각 선생, 민주화 일선에서 노력했던 박상도, 김재규, 김형기, 여창호, 김재천 등 많은 이들이 선생님을 찾았습니다. 특히, 김영삼과 김대중의 대통령 후보 단일화논의가 격화될 무렵, 김상근 목사가 선생님과 정국 현황을 논의하기 위해 서울에서 자주 내려왔고, 현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부산에 오시면 여신도회원들과 자주 기념촬영을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중부교회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칠흑 같은 어둠과 암울한 대지의 목마른 사람들에게 다가올 희망의 메시지를 들려주는 사막의 쉼터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선생님은 19901월 설교에서 정체를 바꾸다”(사무엘상 8:1018, 호세아 4:13, 로마서 13:1~14)라는 주제로 이스라엘 시대의 왕과 국민 간의 관계와 남북 왕국의 멸망, 우리나라의 정치사를 설명하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영삼 씨는 6개월 전과 지금의 말이 다른 한순간의 변절자라고 비판하시며, 김대중 선생을 지지하는 입장을 드러내셨습니다.

선생님은 민주화 과정 중 부마항쟁‘6월항쟁이라는 커다란 사건을 겪으면서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피로로 인해 두 번이나 성분도병원에 입원하시고, 대수술과 생명의 위태로운 고비를 넘기셨습니다. 담당 의사와 가족들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전두환 정권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지속하셨습니다. 어느 날 내가 선생님! 건강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조금 쉬시면서 후배들을 독려하십시오라고 했더니, 선생님은 괜찮아! 아무 일도 없으니 걱정 마라라며 특유의 웃음을 보이셨습니다.

그 후, 선생님의 건강은 극히 악화되고 있었으나 사모님을 포함해 누구의 말씀도 듣지 않으셨습니다.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거제도 애광원(김임순 원장)의 행사에 참여하고 오셨을 때, 아내가 염려하던 말을 기억하며 전화를 드렸더니, 선생님은 여전히 아무 일 없어! 나는 건강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나는 그런 선생님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선생님의 육성을 듣는 마지막 기회가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선생님과 중부교회의 기억은 여전히 내 마음 깊이 남아 있습니다. 그곳은 단순한 교회가 아니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며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소중한 공간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남기신 가르침과 삶의 철학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가르침을 기억하며, 선생님이 꿈꾸셨던 정의와 평화의 세상을 위해 계속해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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