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전두환 정권을 지나 노태우 정권 시절, 동구권의 변화와 소련과의 수교에 따른 북방 정책 추진 과정에서 선생님은 우리 민족의 통일 문제에 대해 많은 식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는 통일 문제에 있어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히는 상황을 우려하며, 정책 당국자나 정치인들의 노림수, 통일 반대론자들의 조직적 저항으로 인한 국민적인 분열을 걱정하셨습니다.
특히 선생님은 독일의 통일 과정을 지켜보며 부러움과 함께 남북 평화와 통일 한국을 위해 많은 생각과 행동을 하셨습니다. 그의 남북관계 기본 원칙과 통일관은 당시 매우 진보적인 발상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남북 대결 관계를 평화적인 통일로 정착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는 전제를 두고, “지구상 냉전의 마지막 장을 이 땅에서 매듭짓기 위해서는 독일의 브란트 정권이 했던 것처럼, TV 시청, 자유 왕래, 서신 교환 등 양측이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는 우리 스스로의 선택과 결단, 행동만이 민족사의 어려운 고비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통일 문제는 정치인의 독점물이 아니라 민간도 참여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상호 기존 체제를 인정하고 자유와 평화를 위한 범민족적 조직으로 단계적인 대화를 실천하자’는 주장을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몸속에 박힌 공산당의 총탄으로 남다른 감회와 젊은 날의 아픔이 있었지만, 통일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앞선 생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는 “반세기가 넘는 아픈 분단의 역사적 경험과 동족 상잔의 피흘림이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간직하고 계셨습니다.
80년대 후반, 소련의 고르바쵸프 공산당 서기장이 취임하면서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동유럽의 자유화 바람이 불어닥칠 때, 선생님은 많은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이는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일당 독재, 경제적으로는 계획․통제 방식의 경제 정책을 골자로 한 종래의 이론 공산주의에서 벗어나, 인간의 창조력과 생산성을 가미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고르바쵸프에게 경의를 표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안병무 선생의 조직신학과 해방신학에도 관심을 가지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러한 성찰은 단순히 마르크스주의 사상에 얽매이지 않고, 자본주의 독재 정권에서 나쁜 짓을 하며 타락하는 인간들의 모습과 글로벌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문제점들이 드러나면서, 선생님은 또 다른 삶의 원초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성서적 대안과 남북 문제에 대한 묘안을 찾기 위해 마르크스주의를 다시 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선생님과 이 주제에 대해 논의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비판 사회 이론에 대한 민중의 관심과 설득력 부족으로 당분간 사회주의 확산은 어렵겠지만, 외국의 사회주의 국가는 어떤 형태로든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주의가 어느 계층 또는 어떤 형태로 그 역할과 태도에 있어 주목받는 시절이 올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이러한 선생님의 통찰과 비전은 그 시대의 아픔을 이해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소중한 자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의 생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며, 통일 문제와 사회의 발전을 위한 방향성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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