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적 출입국' 주장으로 가려질 수 없는 본질적 의혹

수원지방법원 형사12부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의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피고인 A씨와 B씨는 자신들의 행위가 "합법적인 절차"였고, "국가의 존립이나 자유민주주의에 해악을 끼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변호인은 광저우 출입국이 정상적인 경로였음을 강조하며, 공소사실이 구체성을 결여했다고 방어 논리를 펼쳤다.

 

하지만 이 사건의 본질은 단순한 출입국 절차나 일정의 모호함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건의 핵심은 이들이 2018년 9월 중국 광저우에서 북한 공작원을 접선하고 지령을 받아 귀국했다는 혐의다. 이는 국가보안법상 '특수잠입·탈출', '회합' 조항에 명백히 저촉되는 중대한 사안이다. 피고인들의 해명은 그 만남이 없었다는 부정이 아니라, 형식상 절차가 적법했다는 주장일 뿐이다. 결국 '북한 공작원과의 접선'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뒤 보완 수사를 진행했고, A씨와 B씨가 실제로 북한 지령문에 따라 활동한 정황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한 주장이나 의혹이 아니라, 국가정보기관이 정밀하게 추적한 결과다. 피고인 측은 공소사실의 구체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하지만, 이 문제는 본안 심리 과정에서 다뤄질 사안이지, 혐의의 전체 신뢰도를 흔들 논거가 되기 어렵다.

 

더욱이 이번 사건은 이미 유사 전례가 존재한다. 피고인들이 접선했던 것으로 알려진 석모 씨는 2017년부터 2022년까지 북한으로부터 지령을 받아 간첩 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지난해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그 역시 노조 활동을 가장해 국내외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선했던 것으로 드러났으며, 이번 사건은 그 연장선에서 이해돼야 한다.

 

그렇다면 A씨와 B씨는 북한 공작원을 접선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면, 이들은 그 만남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다만 해당 행위가 국가보안법상 처벌 대상이 아니며, 구체적인 지령이나 회합의 내용이 특정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피고인들은 접선의 사실 여부보다는 그 법적 책임 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혐의 사실 일부를 인정한 것으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 사건은 단순히 몇몇 인사의 활동 경로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노조 간부 출신 인사들이 국가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간첩 활동에 연루됐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 전반의 안보 인식을 되돌아보게 한다. 법의 판단은 냉정해야 하며, 피고인의 방어권은 보장돼야 하지만, 동시에 진실을 가리는 구실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

 

다음 공판준비기일은 내달 24일로 예정돼 있다. 이 과정에서 보다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정황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국가의 안전과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한 이력이 있다면, 그에 걸맞은 엄정한 책임이 반드시 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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