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 타고 예루살렘으로: 예수님의 입성과 그 의미

1990년 4월 8일, 최성묵 목사님은 중부교회에서 "나귀 타고 예루살렘으로"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셨다. 이날 설교는 마태복음 21장 1절에서 9절, 즈가리아 9장 9절에서 10절, 요한복음 21장 1절에서 9절의 말씀을 바탕으로 예수님의 입성과 그에 대한 의미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시간이 되었다.

설교의 시작에서 목사님은 예수님의 기사가 마가복음 12장에서 시작되며, 수난사가 복음서의 삼분의 일 분량을 차지한다고 강조하셨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한 첫날 아이들의 환성이 들리고, 둘째 날 밤에는 성전에서 활동하며, 셋째 날에는 치열한 싸움을 예고한다고 하셨다. 마태복음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라는 외침과 대제사장들의 분노, 그리고 성전을 깨끗이 하는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예수님은 갈릴리의 예언자로서 일반 민중과 함께 하셨고, 어린아이들이 그를 구세주로 여겼다. 복음서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예수님의 입성은 온유한 왕으로서의 모습으로 가난한 자에게 다가가는 것이었다. 나귀는 부유한 자들이 아닌 가난한 자들에게 친근한 동물로 인식되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다윗왕은 한때 폭력을 강화했지만, 예수님의 입성은 로마 지배 아래에서 평화를 세우는 사건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한 모습은 고난과 희생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예고로 볼 수 있다. 맨주먹으로 오랜 여행에 지친 제자들이 나귀를 타고 입성하는 모습은 이 시대의 갈등과 혼란 속에서 정의가 넘칠 것이라는 희망을 암시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입성은 단순한 혁명적 사건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예언자가 예루살렘 외에서 죽을 수 없다"는 말씀을 통해 예루살렘에서의 결정적인 사건을 암시하셨다. 그의 입성은 불을 지르기 위한 것이며, 이는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전파하려는 의도였다. 예수님의 불은 재판의 상징으로,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예수님의 입성은 겉으로 보기에는 우습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나귀는 전통적인 왕의 입성에 어울리지 않는 동물로, 겸손과 온유함을 상징했다. 예수님은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라, 온유함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 하셨다. 마태복음 5장 5절에서 강조하듯이, 온유는 "원수들에게 상처를 입는다"는 궁극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사야 53장 4절과 5절의 말씀은 예수님의 고난이 속죄의 재물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세상의 지배체제를 무너뜨리고 온유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한 길을 가셨다. 그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한 것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인류의 구원을 위한 큰 계획의 시작이었다.

목사님은 예수님의 고난이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강조하시며, 우리가 그 의미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입성은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왕의 입성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임재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이 설교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에 온유함과 겸손함을 요구하시며, 우리가 그분의 모습을 따를 수 있도록 인도하신다. 우리는 예수님의 나귀 타고 입성한 사건을 통해 진정한 왕의 의미를 새기고, 그분의 뜻을 우리의 삶 속에서 구현해야 한다.

최성묵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과 희생의 의미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그에 따라 우리의 신앙을 더욱 견고히 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한 사건이 단순한 역사적 사실이 아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메시지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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