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의 기적: 예수님의 궁극적 메시지

1990년 3월 25일, 최성묵 목사님은 중부교회에서 "요나의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셨다. 이날 설교는 마태복음 16장 1절에서 4절, 에제키엘 3장 5절에서 9절, 그리고 사도행전 4장 5절에서 12절의 말씀을 바탕으로 예수님의 사역과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시간이 되었다.

설교의 시작에서 목사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건이 위대한 구원의 순간임을 강조하셨다. 이 시기는 사순절의 네 번째 주일로,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공생애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중요한 시점이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의 설교 이후 민중들로부터 배척당하며,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에게 집요하게 대결을 요구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민중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갈망하며 징표를 요구했다.

당시 식민지 지배체제는 수탈과 생존의 위협을 안겨주었고, 집권층은 율법을 이데올로기로 삼아 민중을 억압하고 있었다. 민중은 노예처럼 구겨진 삶을 살고 있었고, 그들이 바라는 것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였다. 메시아로서의 예수님의 등장은 그러한 민중의 욕망과 갈증을 해소할 것이라 여겨졌다. 이때 시몬과 같은 경건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이 구원받기를 바랐다. 이러한 경향은 지배계급의 사람들조차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들의 의도는 달랐다. 바리사이파와 사두개파는 율법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는 계층으로, 예수님이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자 그를 이해하거나 용서할 수 없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보통 사람이 아닌 신적인 권위로 뒷받침된 존재라고 의심했다. 민중과 권력층은 예수에 대해 상반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민중은 자유와 해방을 요구했고, 권력층은 신적인 확인을 요구했다. 그들은 하나님이 예수를 보낸 증거를 확인함으로써 기득권을 잃을까 두려워했다.

마가복음 8장 12절에서 바리사이파의 요구에 대해 예수님은 탄식하셨다. "오늘은 하나님, 내일은 가이사에게로" 가는 세대에게 더 이상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11장 29절에서도 "이 시대가 표징을 구한다고 탄식했다"며, "이 세대에게 보여줄 징표는 없다"고 선언하셨다. 예수님은 새로운 시대를 바라보면서 징표를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답답함을 느끼셨다. 사실 예수님 그 자체가 징표라는 것을 그들은 깨닫지 못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길잡이"라고 자신을 선언했지만, 감옥에 갇히자 예수님이 구주인지 의심하게 되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들이 듣고 못 그대로이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자는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이다. 대중적인 인기가 있는 곳으로 사람들은 쉽게 쏠리는 경향이 있다.

최성묵 목사님은 "요나의 기적"이라는 주제를 통해 신앙이 기적을 낳는다고 강조하셨다. 기적이 사업을 낳는 것이 아니라, 신앙이 기적적이라는 것이다. 믿음은 표적을 능가하며, 예수님은 단순한 부적이나 점치는 존재가 아니라 살아있는 표적이라는 것을 강조하셨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징표를 보여줘도 믿지 않겠지만, 신앙이 있는 사람은 보여주지 않아도 믿는다.

예수님은 부활의 영광을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경고하셨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징표인데, 그 최후의 징표를 보고도 무엇을 망설이겠냐는 질문을 던지셨다.

이 설교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신앙의 본질을 일깨워 주신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찾을 수 있으며, 그분이 바로 우리의 구원자이자 메시아임을 깨달아야 한다. 요나의 기적처럼, 우리의 신앙이 기적을 낳고, 그 기적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기를 기원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