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488년, 백제의 동성왕(東城王)은 북위(北魏)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백제의 영토와 군사적 위상을 확립하는 중요한 사건을 맞이했습니다. 이 전쟁에서 동성왕은 저근(姐瑾), 부여고(扶餘古), 부여력(扶餘歷), 부여고(扶餘固) 등 4명의 장군을 파견하여 북위군을 크게 무찌르고, 이들 장수를 왕과 제후로 봉하는 논공행상을 단행했습니다.
북위의 공격은 당시 수도인 평성(平城, 현재의 중국 산서성 대동시)에서 시작되어 태행산맥을 넘어 백제의 광양군으로 향했습니다. 이 지역은 현재의 북경시 밀운구 동북쪽에 해당합니다. 전투 중 조선태수 양무(楊茂)는 인근에서 고달(高達)과 함께 백제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급히 출동했습니다. 저근과 다른 장수들은 중앙군을 이끌고 북위군을 섬멸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전투에서의 승리는 백제의 군사적 위상을 높였고, 동성왕은 전후에 장수들을 각각 새로운 지역의 태수로 임명했습니다. 회매(會邁)는 청하군의 태수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청하군은 한반도에는 없는 지명으로,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 따르면 현재의 하북성 형태시 청하현에 해당합니다. 이는 백제가 대륙에서의 영토를 확장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조선태수 양무는 광릉군으로 발령받았고, 이 광릉군 역시 한반도에는 없는 지명입니다. 광릉군은 북위 시대의 기록에 따르면 현재의 하남성 식현(息縣) 근처에 위치해 있으며, 백제가 북경에서 상해에 이르는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했음을 시사합니다. 이는 백제의 대륙 진출이 얼마나 광범위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고달은 광양태수로 부임한 후 대방군으로 발령받았습니다. 대방군은 백제가 건국된 지역으로, 후한 말 요동 지역의 군벌 공손강(公孫康)이 설치한 군입니다. 대방군의 위치는 현재의 황해도에 국한되지 않으며, 낙랑군과의 관계를 통해 요동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백제가 대륙에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기록들은 백제가 단순히 한반도에 국한된 소국이 아니라, 대륙에서의 강력한 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동성왕의 통치 아래, 백제는 북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군사적, 정치적 위상을 높였고, 그 결과로 장수들은 왕과 제후로 봉해졌습니다. 이는 백제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대륙백제의 영토가 얼마나 넓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결론적으로, 동성왕의 전쟁과 논공행상은 백제의 대륙 진출과 제국으로서의 위상을 드러내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백제는 북위와의 전투에서 승리하며, 대륙에서의 영토를 확장하고 군사적 위상을 높였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백제가 단순한 한반도의 국가가 아닌, 대륙에서의 강력한 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입증합니다.
그러나 식민사학계의 태두인 고 이병두 박사를 비롯한 식민사학자들은 '한반도의 백제가 중국 만주까지 말을 타고 북위와 전쟁을 치루었다'고 주장하거나, '기록이 잘못되었다'고 우기고 있습니다. 여러분! 두 가지 가설이 모두 말이 된다고 보나요? 정말 한심한 역사학자들입니다.
백제의 역사적 위상과 대륙에서의 영향력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사실들은 백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동성왕의 전쟁은 단순한 군사적 승리를 넘어, 백제가 대륙에서의 강력한 세력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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