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진화의 새로운 패러다임: 임도 확충의 무용론

최근 영남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인해 산림청이 임도(林道) 확충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전문가들과 소방관들 사이에서는 임도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은 임도가 오히려 산불 확산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대형 산불 진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방관들은 “고속도로가 있어도 산불을 끌 수 없고, 임도를 따라 진화에 들어갔다간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강우 강원 원주소방서장은 “봄철 대형산불은 강풍으로 인해 발화 지점으로 가면 이미 불이 몇 킬로미터씩 번져 있다”며, “불의 확산 속도가 사람의 이동 속도보다 빠르기 때문에 임도를 활용한 초기 진화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그는 임도가 바람길을 형성해 오히려 산불 확산 속도를 높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도 임도의 무용론을 지지하고 있다. 

이상호 강릉소방서 예방안전과장은 “겨울철 산불은 공기가 무겁고 불똥이 멀리 날아가지 않기 때문에 임도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봄철 대형산불에서는 임도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봄철 대형산불은 이미 산 능선을 넘어 급격히 확대되고 있어 초기 진화가 불가능한 상태”라며, 정책 수립 시 임도 개설보다 진화 기술 개발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정석 산불정책기술연구소장은 “임도가 바람길이 되어 불이 더 빨리 번질 뿐”이라며, “임도 확충 예산을 마을 방어벽이나 대피 인프라 구축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주장했다. 그는 “임도가 진화차의 진입을 쉽게 해준다는 주장은 좁은 비포장도로에서는 회차도 못 하고 갇혀서 타죽을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병성 기후재난연구소 상임대표는 “임도 덕분에 산불을 끈 현장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며, “산림청이 임도 확충을 주장하는 진짜 속내는 벌목”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임도 확충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예산을 따기 쉬운 논리를 대며 임도 타령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는 “임도 조성, 숲 가꾸기, 사방댐 설치는 세트 사업으로, 이들 사업이 산림청 연간 예산의 약 50%를 차지해 포기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임도가 바람길 역할을 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된 사실”이라며, “임도 주변에서의 벌목과 숲 가꾸기가 건조화를 유발한다”고 우려했다.

결국, 대형 산불 진화에 있어 임도 확충은 무용지물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형 헬리콥터를 통한 진압이 우선이며, 이후 임도를 통한 잔불 정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산불 진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산림청은 임도 확충에 대한 재고와 함께, 주민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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