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브네에서의 유대교 재건: 새로운 시작과 도전

제1차 유대 독립전쟁이 실패한 후, 유대 사회는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 전쟁을 주도했던 열심당과 자객당, 사두개파, 에세네파는 모두 소멸하였고, 오직 바리사이파만이 생존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유대교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했습니다.

AD 70~80년, 율법학자 요하난 벤 자카이는 바리사이파를 이끌고 텔아비브 남동쪽 약 20㎞ 지점에 위치한 야브네(그리스어로 얌니아)로 이동했습니다. 성전이 파괴된 이후, 그들은 오로지 율법 중심의 유대교를 재건하기 위해 힘썼습니다. 요하난 벤 자카이는 이곳에서 율법학교(베트 미드라시)를 개설하여 신학적 교육을 시작하였고, 이는 유대교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의 후임자 가밀리엘 2세는 최고의결기관인 베트딘을 창설하여 유대교의 법과 전통을 수호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 기관은 유대교의 법적 및 종교적 문제를 다루는 중요한 기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또한, 100년경에는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된 구약 성서의 범위를 확정짓는 작업도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아가〉, 〈전도서〉, 〈에즈라〉의 경전 여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논란이 계속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 속에서 85년경, 야브네에서 작은 사무엘 랍비는 유대인들이 회당 예배 때마다 바치는 18조 기도문(슈모네 에즈레, 아미다)의 제12조에 변화를 주었습니다. 이 기도문에서는 이단자들을 단죄하는 구절에 나자렛 사람들(그리스도교도들)을 추가했습니다. 바빌로니아 탈무드에 따르면, 이로 인해 그리스도교도들은 회당 예배에 참석할 수 없게 되었고, 이는 그들이 독립적인 종교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12조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자렛 사람들과 이단자들은 사라지게 하소서. 살아 있는 이들의 책에서 그들을 지워버리시어 의인들과 함께 씌어 있지 않게 하소서. 무엄한 자들을 굴복시키시는 하나님, 찬양받으소서." 이러한 기도문은 유대교 내부에서 그리스도교와의 단절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며, 두 종교 간의 관계가 더욱 멀어짐을 보여줍니다.

야브네에서의 유대교 재건은 단순한 종교적 복원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유대인의 정체성과 문화, 그리고 신앙의 방향성을 새롭게 설정하는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성전의 파괴 후에도 유대인들은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이는 후에 유대교가 발전하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결국, 야브네는 유대교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고, 바리사이파의 지도 아래 유대교는 성전 중심의 종교에서 율법 중심의 종교로 변화하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유대교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이후의 역사 속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 유대교의 기초가 바로 이 시기에 형성된 것입니다.

야브네에서의 재건은 유대인이 외부의 압박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순간으로, 유대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과정은 유대교가 단지 종교적 신념을 넘어, 문화적 정체성과 민족적 연대감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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