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은 BC 63년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가 이스라엘을 점령한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이후 AD 135년 제2차 유대 독립전쟁의 실패까지,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에 맞서 줄기차게 독립운동을 벌였습니다. 이 시기에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바로 열심당의 결성입니다.
AD 6년, 로마 황제 옥타비아누스는 유대와 사마리아를 다스리던 아르켈라우스 왕을 폐위하고, 코포니우스를 그 지역의 총독으로 임명했습니다. 코포니우스 총독은 자신의 관할 지역에 주민세를 부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주민세는 12세에서 65세까지의 주민이 매년 1데나리온씩 내야 하는 인두세였으며, 이는 유대인들에게 큰 부담이었습니다.
이러한 세금 부과에 반발한 유대인들은 저항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가믈라 요새 출신의 유다를 중심으로 모였습니다. 그는 주민세 거부운동을 벌이며 동지들을 모아 열심당(젤롯당)을 조직했습니다. 열심당은 단순한 반란 세력이 아닌,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한 독립운동 단체였습니다. 그들이 내세운 기치는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통치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로마 황제의 흉상과 황후의 좌상이 양각된 은화 데나리온을 세금으로 바치는 것을 우상숭배로 간주하며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열심당원들 가운데 극력 분자들은 '자객들'(sicarii)로 불렸습니다. 이들은 더욱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로마 제국의 통치에 저항했습니다. 자객들은 은밀하게 적들을 암살하고,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한 무장 투쟁을 벌였습니다. 이러한 저항 운동은 유대 사회 내에서 큰 지지를 받았고, 그들은 신앙과 민족적 자긍심을 바탕으로 독립을 위해 싸웠습니다.
열심당의 결성은 단순히 세금에 대한 반발이 아니라, 유대인의 정체성과 신앙을 지키기 위한 투쟁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들의 저항은 로마 제국의 압박 속에서도 유대인의 독립을 향한 열망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외부의 압력에 맞서 싸우며, 자신들의 신앙과 문화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이 시기의 역사적 사건들은 후에 유대인의 디아스포라와 유대교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열심당의 결성은 유대인들에게 단순한 저항의 의미를 넘어, 그들의 정체성을 재확립하고 민족적 연대감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투쟁을 통해 자신들의 역사를 이어갔고, 이후에도 계속해서 독립과 정체성을 위해 싸워 나갔습니다.
이스라엘의 멸망과 독립 운동은 유대인의 역사에서 중요한 교훈을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독립운동과 열심당의 결성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그들의 신념과 삶의 방식에 깊은 영향을 미친 중요한 사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오늘날에도 유대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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