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사랑하라.” 이 말씀은 최석현 장로의 신앙과 인품을 잘 보여주는 일화로, 그의 믿음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식의 목숨을 위협했던 원수를 용서하는 것은 크리스천이라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당시 주류 반공주의 기독교와 달리,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며 무의미한 증오와 살육의 고리를 끊으려는 참 기독교인의 모습을 보였다. 전쟁은 공동체를 파괴하고, 어제의 이웃을 오늘의 원수로 만들어내는 종말론적 상황을 낳았다.
최성묵이 살아서 돌아왔다는 소식은 흥해 전역에 퍼졌다. 그 소식과 함께 국군과 미군이 마을로 찾아왔다. 그들은 먼저 최성묵의 집을 찾았고, 불편한 몸을 일으킨 최성묵은 그들을 맞이했다. 미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군 장교는 최성묵에게 겪은 고초를 위로한 후, 그 모든 것이 빨갱이의 소행이므로 그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인민군 점령 기간 중 그에 부역한 자들을 지목하라고 요구했다. 이장에게는 마을 사람들을 마을회관으로 모으라고 명령했다.
군인들이 집을 나서면서 최성묵에게 곧 마을회관으로 오라고 말했다. 그때 부친 최 장로는 아들을 부르며 말했다. “성묵아,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니라.” 그 말이 최성묵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지난 8월에 일어났던 일들이 그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죽어간 친구 종수의 얼굴, 조막손과 함께했던 친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긴 침묵 후, 최성묵은 조용히 대답했다. “예, 제 뜻도 아버지와 똑같습니다.”
무거운 걸음으로 마을회관으로 향한 최성묵은 그곳에서 마을의 청장년들이 대부분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국군 장교는 최성묵에게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서 인민군에게 부역한 자를 가려내라”고 다시 독촉했다. 최성묵은 천천히 힘든 걸음을 옮기며 주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 중에는 조막손과 함께 있던 청년들도 눈에 띄었지만, 그는 조용히 마을회관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장교에게 말했다. “여기 있는 사람 중에는 부역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최성묵의 이 결정은 단순한 용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는 자신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신앙의 가르침을 따르며,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행동은 전쟁이 가져온 증오와 분열 속에서도 사랑과 연민이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최성묵과 그의 가족은 전쟁의 비극 속에서도 인내와 사랑으로 서로를 지켜주며, 참된 크리스천의 삶을 살아가고자 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한 개인의 생존기를 넘어,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으려는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는 감동적인 기록으로 남아 있다. 최성묵의 신념과 용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명을 주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차성환 지음(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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