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생환: 최성묵 목사의 생사를 건 귀환 이야기

최성묵의 생사조차 모르는 부모 형제들은 그의 소식에 한없이 무거운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 그에 대한 소문은 모두 그가 죽었다는 이야기로 가득했다. 당시 사용되던 야전병원 터널 입구가 폭격으로 파괴되었고, 그곳에서 살아남았을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죽은 것을 직접 보았다는 사람의 이야기도 전해지면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점점 더 희박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차마 최성묵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한 가닥의 기적 같은 소식을 기다리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가을을 지나 겨울을 맞았다. 그러나 기다리던 소식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마침내 11월 15일, 부모님은 최성묵이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동네에서 삽을 빌어다 놓았다. 다음 날 날이 밝는 대로 곡강터널 입구로 가서 유골이라도 수습해 장례를 치르기로 결심했다.

부모님은 아들의 장례를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밤새 뒤척이다 어렴풋이 선잠이 든 새벽녘, 누군가의 가느다란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아버지, 성묵이가 왔습니다.” 그 소리는 마치 최성묵의 혼령이 부르는 듯 희미하게 들려왔다. 꿈속에서 들리는 몽롱한 소리 몇 차례가 반복된 후, 문간방에 살던 복남이 엄마가 안방을 향해 외치는 소리를 듣고야 비로소 부부는 대문간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정말로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새벽의 희뿌연 대기 속에서 입김을 내뿜으며 서 있었다. 부모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얼어붙었고, 그들은 한순간에 기쁨과 감격에 휩싸였다. 최성묵이 살아 돌아온 기적은 가족에게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안겨주었다.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가족의 사랑과 인내가 어떻게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최성묵의 생환은 단순히 한 가족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전쟁 중에 수많은 이들이 겪었던 고통과 불확실성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기다림의 가치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나타낸다. 최성묵과 그의 가족은 서로를 다시 만난 기쁨을 통해, 전쟁의 비극 속에서도 사랑과 연대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차성환 지음(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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