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초대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로 지명한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히 자격 문제를 넘어, 과거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이 현재 정권의 인사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정치적 방정식이다. 특히 이종석과 박지원 전 국정원장, 문재인 전 대통령, 그리고 이재명 대통령 간의 함수 관계를 들여다보면, 단순한 인사 논란 이상의 함의가 숨어 있다.
이종석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역임하며 남북관계에 깊숙이 관여했던 대표적 대북 유화주의자이다. 당시 그는 북한에 대한 ‘내재적 접근’과 ‘체제 인정’을 주장하며, 현실적 협력과 대화를 통한 장기적 평화 체제를 지향했다. 이러한 접근법은 박지원 전 국정원장의 햇볕정책 노선과 매우 유사하며, 두 사람은 2000년대 초부터 공식·비공식적으로 교류하며 정책 기조에 있어 밀접한 공감대를 형성해왔다.
박지원은 김대중 정부에서 6·15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역이자,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 국정원장을 지내며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한 실무와 대북 정보 전략을 설계한 인물이다. 그는 문재인 정부 내에서 ‘현실적 중도’로 포지셔닝 했으나, 기본적으로는 대북 유화와 대화 우선론을 견지했다. 이종석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박지원의 정책 방향을 이론적으로 보완하는 브레인 역할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즉, 박지원이 실무의 축이라면, 이종석은 이론과 철학의 축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러한 라인을 계승해 2018년 평창올림픽, 판문점 회담,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등을 중재하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했다. 당시 이종석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외부 자문과 정책 논평 활동을 이어갔고, 박지원은 국정원장으로 대북 채널의 복원을 실질적으로 담당했다. 이들의 관계는 상호 신뢰와 정책 일체성에 기반한 구조였다.
문제는 이 같은 구조가 이재명 정부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외교·안보 분야에 있어서 뚜렷한 독자 노선을 갖기보다는 문재인 정부의 인적·정책적 유산을 적극 수용하고 있다. 이종석의 국정원장 지명은 바로 그 연장선에 있다. 정책 노선의 연속성 측면에서는 일관성을 보여주지만, 정보기관 수장이라는 특수성까지 동일한 기준으로 접근할 수 있느냐는 지점에서 의문이 생긴다.
더욱이 이종석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13차례에 달하는 방북 기록을 둘러싼 논란, 국보법 폐지 관련 과거 발언과의 모순, 청문회 자료 제출 비협조 등 여러 지점에서 공직자로서의 신뢰성을 스스로 훼손했다. 박지원 전 원장이 정보기관 수장으로 재직할 당시에도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있었으나, 최소한 정보기관의 보안성과 기강 유지에 있어선 실용적 태도를 견지했다는 평가가 따른다. 반면 이종석은 현재까지도 자신의 방북 이력에 대해 “정치적 공격”이라며 방어적 태도를 보이고 있어, 향후 국정원 운영에서 중립성과 실효성 모두에 의문이 제기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왜 굳이 이종석을 선택했을까? 이는 단순한 전문성이나 경험 때문이 아니라, 박지원-문재인-이종석으로 이어지는 대북 유화 라인을 신뢰하고 그 틀을 유지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보기관은 과거 대북 정책을 재현하는 실험장이 아니라, 현재의 안보 위협에 대응해야 할 전략의 최전선이다. 더욱이 미국, 일본과의 정보 공조가 중요한 시점에, 국제사회가 이 인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중요한 변수다.
이종석의 지명은 결과적으로 이재명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 라인을 정치적으로 계승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외교 색채를 입히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보기관의 독립성과 신뢰성이라는 기본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면, 이는 대통령의 전략적 오산일 수 있다. 박지원-이종석 라인의 과거가 아무리 의미 있었더라도, 지금은 안보의 엄중한 현실 앞에 새로운 기준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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