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쌀 대란과 고이즈미 장관의 파격 조치, 그리고 한국과의 쌀 교역사

최근 일본 전역에서는 쌀을 사기 위해 마트 앞에 긴 줄이 늘어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내놓은 비축미 유통 정책이 도화선이 되었다. 이 정책은 기존의 일본농협(JA) 유통망을 거치지 않고, 정부 비축미를 마트에 직접 공급하는 방식이다. 무엇보다 시중가의 절반 가격으로 판매되면서 소비자들 사이에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문제는 이 정책이 자민당 내부의 전통적인 쌀 농가 지지 세력, 이른바 '농수족'과의 충돌을 불러왔다는 점이다. 노무라 데쓰로 전 농림수산상은 고이즈미 장관이 당과 충분한 논의 없이 독단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였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고이즈미는 "장관이 일일이 당에 물어야 한다면, 어떤 개혁도 할 수 없다"며 정면 반박했다. 그의 이런 발언은 국민들 사이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으며, 닛케이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65%가 이 정책에 기대를 표했다.

 

고이즈미 장관은 쌀값 안정을 위해 수입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일본 내 자급자족 농업 시스템에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는 발언이다. 비축미는 양에 한계가 있고, 향후 폭염 등으로 인해 쌀 수급이 더욱 불안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이번 쌀 수급 위기는 과거 한국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1990년대 한국은 극심한 쌀 부족 사태를 겪으며 수입에 의존해야 했다. 특히 1993년 한해 쌀 생산량 급감으로 인해 정부는 대규모로 외국산 쌀을 들여왔고, 이 과정에서 일본산 쌀 일부도 수입된 바 있다. 당시 일본은 상대적으로 잉여 쌀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를 한국에 판매해 일시적 위기 극복을 도왔다.

 

반면 최근 수년간 한국은 쌀이 남아도는 상황이다. 소비 감소와 고령화, 식습관 변화로 인해 쌀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2020년대 들어서는 오히려 한국이 비축미를 활용해 일부 국가에 수출하는 경우도 생겼다. 한국은 WTO 협정에 따라 의무적으로 일정량의 쌀을 수입하고 있으나, 국내 생산량이 이를 초과해 수급 과잉 문제를 겪고 있다.

 

따라서 현재 일본과 한국은 30여 년 전의 입장을 맞바꾼 셈이다. 당시 한국이 일본의 쌀에 의존했던 것처럼, 이제는 일본이 한국산 쌀 수입을 고려할 가능성도 생겼다. 이는 양국 간 농업 정책이 단순한 자급률을 넘어서 시장의 변화와 소비 패턴, 정부 정책의 유연성에 따라 얼마나 크게 영향을 받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쌀은 단순한 식량이 아니라 양국 국민의 정서와 정치적 기반을 좌우하는 상징적 작물이다. 일본이 비축미를 마트에 공급하는 유통 실험을 감행한 만큼, 한국도 소비자와 생산자 간 균형을 맞추기 위한 유연한 제도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두 나라가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쌀 정책에서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지점은 분명 존재한다.

 

결국 쌀값은 단순한 농산물 가격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유통 개혁 의지, 정치 구조, 국민 정서까지 복합적으로 얽힌 이슈다. 일본의 파격 실험이 성공할 경우,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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