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아름다움, 활옷의 재탄생: 미국에서 돌아온 전통 혼례복

조선 시대의 신분제 사회에서 가장 진한 붉은색인 대홍(大紅)의 염색은 왕실에만 허락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의상인 홍장삼(紅長衫), 또는 활옷은 공주, 옹주, 군부인 등 왕실 여성들이 혼례 날에 입었던 특별한 예복입니다. 이 화려한 의상은 구한말 외국인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으며, 현재 50여 점의 활옷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인 미국 피바디에섹스박물관(PEM) 소장 활옷이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공개되고 있습니다. 이 활옷은 18~19세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1927년 당시 유명한 골동상이던 야마나카상회가 PEM에 기증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차례 사용으로 인해 낡고 바랜 상태였고, 최근 국내 기술로 보존처리되어 원래의 아름다움을 되찾았습니다.

채정민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 학예연구관은 "활옷은 처음엔 왕실 혼례복이었지만, 19세기 말부터는 사대부가와 평민들도 혼례 날 입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귀한 재료로 만들어진 활옷은 대를 이어가며 입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PEM 활옷의 보존처리 전 모습은 오염과 탈색, 옷감 마모가 뚜렷했습니다. 특히 목덜미와 소매 부분은 땟자국으로 가득했습니다. 당시 신부는 매번 새 천으로 교체했겠지만, 전체적인 옷감에 얼룩이 생기거나 해지면 자수 문양이 탈락했을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드라이클리닝이 없었기에, 세탁과 수선이 어려웠던 점이 더욱 부각됩니다.

채 연구관은 "비단 한복과 마찬가지로 활옷도 쉽게 세탁할 수 없었다"며, 오염이 심할 경우 봉제를 뜯어 세척하고, 나머지는 새로 교체하는 방식으로 수선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보존처리 과정에서 발견된 여러 겹의 한지 중 하나는 추수기로 확인되었으며, 이는 활옷 제작 시기를 1818년, 1878년, 1938년 중 하나로 추정하는 단서가 되었습니다.

약 13개월간의 보존처리를 거쳐 PEM 활옷은 재탄생하였고, 현재는 신부에게 입혀줄 수 있을 만큼 색상과 자태가 선명해졌습니다. 이번 보존처리는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의 지원으로 이루어졌으며, 만약 오늘날 이와 같은 활옷을 제작한다면 자수 비용만 7000만~8000만원에 이를 것이라고 합니다.

조선의 전통 혼례복인 활옷은 단순한 의상이 아닌, 그 안에 담긴 역사와 이야기를 통해 한국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많은 이들이 활옷의 아름다움과 그 가치를 느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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