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소유, 행동: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찾아라

1990년 2월, 고 최성묵 목사님은 "존재, 소유, 행동: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찾아라"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셨습니다. 본문은 누가복음 12장 13~21절이었습니다. 이 설교에서 목사님은 탐욕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탐욕은 단순한 금전 개념을 넘어, 넓은 의미의 소유를 포함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자의 소유 자체를 금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에 함몰되어 인간의 본질을 잃고 혼자 살아갈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을 나무라셨습니다.

목사님은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 자체가 죄악이 아니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문제는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자신의 탐욕과 교만에 빠지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소유는 생활의 필수조건일 수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삶을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가진 것’ 때문에 오히려 시달릴 수 있으며, 소유는 자기 인생을 끝까지 보장해 주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풍부한 소유는 오히려 마음의 움직임을 착각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인간의 감각적 쾌락이 영원하지 않으며, 때로는 자기 타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쾌락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며, 누릴수록 피로감이 더해지고 새로운 것을 요구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삶의 깊이와 보람, 진리는 고통을 통해 인간의 본질적인 논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동물적이고 생물적인 욕구 충족을 넘어, 인간적인 삶의 노력과 가치 창조는 우리의 근원적 존재 의미를 부여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존재는 소유로 결정되지 않아야 한다고 목사님은 강조하셨습니다. 인간의 삶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으로 판단할 수 없으며, 존재, 소유와 함께 창조적인 인간이 성립되지만, 이 세 가지가 우리의 삶을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인정받아야 하며, 결국 빈손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당당히 빈손으로 심판자 앞에 서야 하며, 그분의 용납과 처분에 맡기는 것만이 우리의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무조건적인 사랑과 자비, 용납으로 우리를 맞아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소유가 하나님의 인식으로 이어져서는 안 되며, 우리의 소유는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궁극적으로 소유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초월하여 하나님을 체험한 믿음 속에서만 내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 된다”는 마음이 어디에서 나올까요? 이것이 확정될 때, 우리는 진정한 인간의 자유를 얻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인간 해방은 나그네처럼 살아가는 것이라고 목사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빈손으로 살다가 빈손으로 가야 하며, 우리의 삶의 목적은 소유를 넘어 하나님의 나라를 찾는 것이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존재와 소유, 행동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며, 진정한 삶의 의미를 추구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먼저 찾는 삶이야말로 우리를 진정한 자유로 이끌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멘.

이 설교는 고대사와 관련된 여러 문헌에서도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의 《논어》에서는 소유와 존재의 관계를 탐구하며, 일본의 고대 문헌인 《고사기》에서도 인간의 존재 의미를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의 역사학자 이병도는 고대 한국 사회에서도 소유와 존재의 관계가 중요한 주제였다고 언급했습니다. 이러한 고대 문헌들은 인간 존재의 의미와 소유의 본질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결국, 우리는 소유를 넘어 존재의 의미를 찾고,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찾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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