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묵의 유년과 신앙: 기독교 가문의 이야기를 통해 본 시대의 고난

최성묵은 1930년 11월 11일, 경상북도 포항에서 태어났다. 그의 출생일은 공식 문서상 1931년 1월 10일로 기재되어 있지만, 가족의 증언에 따르면 실제 출생일은 음력 11월 11일이다. 최성묵은 2남 3녀의 장남으로, 부모님은 기독교에 깊은 신앙을 가진 분들이었다. 아버지 최석현 장로는 흥해교회의 중요한 인물로, 1933년 장로로 장립된 후 교회의 발전에 기여했다.

최성묵이 태어난 시기는 일제의 대륙 침략이 본격화되기 직전으로, 그가 성장한 환경은 정치적 불안정과 사회적 갈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흥해는 기독교가 일찍이 전파된 지역으로, 최 장로 가족은 기독교 신앙을 기반으로 한 강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었다. 어머니 안갑선 권사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제사와 같은 유교적 관습을 거부하는 등 신앙에 대한 강한 고집을 보였다.

최성묵의 유년기 동안, 그는 부모님의 신앙을 통해 기독교의 가르침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제의 황국신민화 교육 아래에서 그는 불행한 유년기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1944년, 그는 일제의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산촌에서 생활했는데, 이는 학병으로 끌려갈 위기에서 도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기에 그의 아버지는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피신생활을 하며 벌목 일을 하기도 했다.

흥해교회는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저항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최석현 장로는 이러한 교회의 지도자로서, 신사참배와 같은 일제의 압박에 저항하는 신념을 지켰다. 교회는 3·1운동에도 참여했으며, 당시 교회의 목사들은 대일 저항운동에 앞장섰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최성묵은 기독교 신앙과 민족적 저항의 중요성을 배우며 성장했다.

최성묵의 가정에서는 부모님의 철저한 신앙과 독립적인 생활 태도가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아버지는 과묵하고 강직한 성격을 지닌 분이었으며, 어머니는 불같은 성격으로 가정에서 주도권을 행사했다. 이로 인해 가정 내에서의 갈등도 존재했지만, 그들은 서로의 신앙을 존중하며 가정을 이끌어갔다.

전후에는 경제적 변화가 찾아왔다. 최 장로와 안 권사는 과수 농사로 생계를 꾸리기 시작했다. 이는 가족의 안정된 수입원을 확보하기 위한 선택이었으며, 그들은 열심히 사과 농사를 일구며 자녀들을 교육시켰다. 특히 안갑선 권사는 남편의 죽음 이후에도 혼자 힘으로 농사를 지으며 자녀들을 고등교육까지 시켰다. 그녀의 강한 의지와 신앙은 자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렇듯 최성묵의 유년기는 단순한 개인의 성장 과정을 넘어, 시대의 고난과 기독교 신앙의 힘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남는다. 그의 부모님은 신앙을 통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며 가정을 지켰고, 이는 최성묵이 성장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최성묵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을 일찍이 체득하며, 이후의 삶에서도 그 신앙의 가치를 이어가게 된다.

 

차성환 지음, 임실근 옮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