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선생님이 하늘나라로 승천하시던 날, 두 가지 사건을 잊지 못한다. 첫 번째는 문익환 목사님께서 추도사를 하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제자인 최목사처럼 민주화를 외치다가 길거리에서 쓰러져 죽겠다”는 그 말씀은 세월이 흐른 뒤 문익환 목사님도 통일운동에 전념하시다가 길거리에서 쓰러져 돌아가신 것을 상기시킨다. 두 번째 잊지 못할 기억은, 영결식장에서 중부경찰서 소속 황형사님이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이다. 황형사는 중부교회 담당 형사로, 10년 이상 교회에서 부목사 자격으로 예배를 보조하시며 설교 내용을 요약해 상부에 보고하던 분이었다. 그날, 선생님이 돌아가시던 날, 그는 가장 많이 서럽게 눈물을 흘리셨다.
평소 그를 잘 알지 못했던 나는, 단지 눈인사 정도의 관계였다. 그러나 선생님을 보내드리며 “나는 그분을 너무 몰랐었구나!”라는 후회를 느꼈다. 그는 선생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담당 형사일 뿐만 아니라, 선생님과의 부딪힘을 통해 형성된 인간적인 교분에서 우러나온 아쉬움과, 너무나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분이었음을 깨달았다.
선생님의 인간 철학은 ‘인간 해방’이었다. 그는 나그네처럼 살아야 하며, 빈손으로 살다가 빈손으로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소유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하며, 죽음을 초월하여 하나님을 체험한 믿음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하셨다. 이를 통해 인간의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의 설교는 시대적이고 역사적인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사랑과 평화, 자유를 위한 외침이었다. 그의 말씀은 아름다운 시적인 표현과 호랑이가 포효하는 듯한 격분, 그리고 너무나 인간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오늘을 사는 인간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현실적인 희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자유와 평화, 정의가 넘치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교인들의 각성과 결단이 요구된다고 외쳤다.
선생님의 설교에서 주로 말씀하신 내용은 정의의 물결이 넘치는 나라, 평화의 나라, 인권의 나라, 우리 민족의 생존 보장과 희망이었다. 그는 우리가 역사에 책임을 지고, 새해에는 새로운 희망과 꿈이 성취되기를 염원했다. 마음의 근심을 씻고 은혜를 받는 나날이 되기를 기도하셨다.
생전에 나는 선생님께 “선생님! ‘설교집’ 하나 만듭시다”라고 말씀드렸지만, 그는 “야! 그런 것 필요없어”라고 하셨다. 그러나 당시 선생님께서 주일 설교 말씀을 메모한 노트에 기록된 내용들을 정리해보면, 그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 교회와 세상을 향해 외친 선생님의 신앙심과 사상적 깊이는 참으로 위대했음을 알게 된다.
이제 그 설교 내용 중 몇 가지를 정리하려 한다. 선생님의 가르침은 여전히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며, 그분의 정신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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