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교회 시절, 최성묵 목사님과 저에게는 가장 가슴 아픈 추억이 하나 있습니다. 교회 일부 청년들이 조그만 교회 수익사업으로 인해 목사님께 조직적으로 대항한 "항명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 청년들 중 일부는 유신 시절 감옥에서 고생하던 이들이었지만, 그 외에도 가담한 이들이 많아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한때 "인간 최성묵"을 "청년 예수"처럼 따르던 순수한 학생들이었기에,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지만, 유신 독재가 한창이던 시기에도 대학교와 일부 교회, 민주 단체 주변에는 이간질을 하던 무리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들의 배후에 누가 있었는지는 지금도 확실히 알지 못하지만, 사건의 발단과 이를 확대하려는 의도를 가진 인물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당시 집사였으며 기독교 관련 언론기관의 책임자였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재에 나섰을 때, 제가 선생님께 꾸중과 오해를 많이 받았습니다. 특히 부산 중구 광복동의 한 다방에서 당시 선후배처럼 지내던 청년들과 만난 뒤 선생님께 화해를 제안했더니, "너 이놈! 정말 회색 분자가 될 것이냐!"고 큰 소리로 호통을 치시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 일을 지금도 생각하면, 선생님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하는 마음에서 가슴이 아파집니다.
하지만 많은 교인들, 특히 고 박순금 장로님과 조성항 장로님, 여성 장로님들, 허귀지 집사, 이해원 집사, 이경화 집사(저의 아내) 등 여신도들이 중심이 되어 교회를 지켜냈고, 선생님께 힘을 주셨습니다.
부산 중부교회는 "부산 민주화 성지"일 뿐 아니라 신앙심 깊은 교인들의 교회였습니다. 선생님의 모든 행동을 이해하고 지켜주신 것은 장로님과 권사님들을 포함한 교인들의 힘이었습니다. 특히, 박순금 장로님은 평양이 고향이셔서 통일 문제와 인권 문제에 많은 정력을 바치셨습니다. 그는 젊은 여신도회의 발전과 여성의 사회 참여를 강조하며 장기와 시신의 기증 운동에도 앞장서셨습니다.
당시 많은 교인들의 행동은 젊고 감성적인 제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전 서울-YMCA 연맹의 강문규 사무총장의 어머니이신 고 최현순 원로 권사님은 제게 큰 감명을 주셨습니다. 당신은 하늘나라로 가시기 며칠 전, 힘들게 골목계단을 오르시며 "성전은 나의 생을 바치는 힘이다"라고 외치신 모습이 기억납니다.
이러한 훌륭한 교인들이 있었기에 중부교회는 60여 명의 교인들이 한마음으로 뭉칠 수 있었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최성묵 목사님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시대의 목마름과 지적인 요구를 넘어, 신도들에게 다가올 희망의 메시지를 들려주는 "사막의 쉼터"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는 많은 목사들이 설교집을 남기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제가 "선생님, 설교집 하나 만듭시다"라고 몇 번 말씀드렸지만, 그는 특유의 웃음으로 "야! 그런 것은 필요 없어"라고 하시며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예수를 따르는 참된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메마르고 각박한 시대에서 신학적인 글과 이론을 남기기보다는 말씀과 행동으로 시대의 무질서를 질타하셨습니다. 그의 관심은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부족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예수의 말씀을 시대 정신에 맞게 행동으로 전파하며, 민중을 자각시켜 유신 독재 정권을 없애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충실하셨습니다.
최성묵 목사님은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선포를 위한 심판과 시대 정신을 설교를 통해 말씀하셨고, 그 내용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그는 마치 예수가 처음 갈릴리의 무식한 어부들과 하루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행동으로 보여주셨던 것처럼, 처절하게 살아가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일부 신도들은 예배시간에 "목사님 설교 내용을" 녹음하기도 했지만, 지금 그 내용을 찾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당시 목사님의 몇 번의 설교 내용이 남아 있는 것을 정리해두고 싶습니다.
최성묵 목사님의 삶은 단순한 개인의 여정을 넘어, 한국 사회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며 희망과 변화를 찾는 여정이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역사이며, 그의 정신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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