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묵 목사와의 마지막 기억: 민주화의 길을 함께 걷다

민주화 과정에서 "부마항쟁""6월 항쟁"은 우리의 역사를 크게 바꾼 사건들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선생님은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피로에 시달리며 성분도병원에 두 번 입원하셨습니다. 대수술을 받고 생명의 위기를 넘기셨지만, 전두환 정권과 맞서 싸우는 민주화운동에 여전히 헌신하셨습니다.

저는 선생님께 건강을 걱정하며 후배들을 독려해 주시라고 말씀드렸지만, 선생님은 "괜찮아! 아무 일도 없어"라는 특유의 웃음으로 저를 안심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후 선생님의 건강은 급격히 악화되었고,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여전히 힘든 길을 걸으셨습니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날, 거제도 애광원의 행사에 참석하신 후, 저는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때도 선생님은 "나는 건강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마지막 육성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선생님이 하늘나라로 승천하던 날, 문익환 목사님의 추도사와 중부경찰서 소속 황형사의 눈물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문 목사님은 "나도 민주화를 외치다가 길거리에서 쓰러져 죽겠다"라고 말씀하셨고, 몇 년 후 그 말씀대로 돌아가셨습니다. 황형사 또한 선생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분이었기에, 그가 흘리는 눈물은 저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선생님은 강함과 부드러움, 투쟁과 서정성이 공존하는 분이셨습니다. 그의 인간 철학은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 살다가, 나그네처럼 빈손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최희준의 "인생은 나그네길"을 개사하여 부르시며,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역설하셨습니다.

그의 설교는 시대적 역사적 성서 말씀을 바탕으로 지구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외침이었습니다. 그의 말씀은 가식이 없고, 시적인 표현과 격렬한 분노가 담겨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인간의 자유와 희망이 약탈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자유와 평화, 정의가 넘치는 세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남긴 가르침과 삶의 모습은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될 것입니다. 그분의 정신과 철학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민주화의 길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 선생님, 당신의 헌신과 사랑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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