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을’ 한미반도체, SK하이닉스와의 미묘한 기싸움…갈등 봉합은 아직도 안갯속

최근 한미반도체와 SK하이닉스 간의 긴장 관계가 반도체 업계의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중순, 한미반도체가 SK하이닉스 이천 공장에 상시 파견하던 50~60명의 TC본더 CS 엔지니어를 전면 철수시킨 뒤, 한 달이 넘도록 이들을 복귀시키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갈등의 본질은 단순한 인력 철수가 아니라, 반도체 공급망 내부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이해관계의 충돌로 해석됩니다.

 

그간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의 HBM(고대역폭 메모리) 생산라인에 TC본더 장비를 대량 공급해왔고, 유지보수 인력도 상시 파견해왔습니다. 하지만 SK하이닉스가 최근 한화세미텍을 TC본더의 '듀얼 벤더'로 공식 지정하면서 기존 협력 구조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이는 곧, 한미 측이 자신들이 최선을 다해 구축한 공급망 지위를 단순한 선택지 중 하나로 격하시킨 것이라 받아들여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업계 일각에선 이 같은 변화가 장비 성능 문제나 CS 품질 논란 때문이 아니라, SK하이닉스의 공급망 전략 변화에 따른 정책적 판단으로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미는 갈등 이후 TC본더 가격 인상을 단행하며, 과거 자신들이 얼마나 헌신적인 지원을 해왔는지 보여주고자 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갈등 국면에도 불구하고 SK하이닉스는 지난 516일 한미반도체에 428억 원 규모의 TC본더 장비 구매 주문을 넣었습니다. 이를 두고 양측의 관계 회복 신호로 보는 시각도 있었지만, 엔지니어 복귀는 여전히 논의 중이라는 입장입니다. 이에 따라 완전한 갈등 해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미반도체가 이런 결정을 내린 데에는 지금 더 급한 쪽은 SK하이닉스라는 판단도 깔려 있는 듯합니다. 이미 수백 대의 한미 TC본더가 설치된 SK하이닉스 HBM 라인은 CS 지원 없이는 정상적인 운영이 어렵고, HBM 생산 확대도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한화세미텍은 아직 안정적인 양산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 신생업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이 한미반도체에게 장기적으로 유리할지는 미지수입니다. SK하이닉스는 이번 경험을 계기로 공급망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SCM 전략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장기적으로 한미의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변수는 마이크론입니다. 한미반도체는 최근 마이크론의 HBM 공급망에도 진입한 상태이며, 현재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SK하이닉스와의 갈등 사례는 마이크론에게도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 내에서 공급망은 단순한 기술력만이 아니라 신뢰, 협력, 전략적 유연성까지 종합적으로 평가받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태는 글로벌 기술력을 가진 강소 기업일지라도 특정 시점에서 슈퍼 을로 군림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기술 경쟁력과 제품 품질을 기반으로 한미반도체는 명실상부한 시장 주도권을 쥐고 있지만, 동시에 복잡한 공급망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전략적 선택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의 유연한 대응과 관계 조율 능력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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