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돈은 먼저 본 놈이 주인?”…온누리상품권 부정 유통과 복지정책의 구조적 재점검 필요

정부가 국민 생활 안정을 위해 도입한 각종 지원 제도가 오히려 부정 유통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드러난 온누리상품권의 조직적 유통 부정 사례는 단순한 일탈을 넘어서 복지 행정 전반의 구조적 허점을 드러낸 사건이다.

 

대구의 한 소매점은 브로커를 통해 687억 원 규모의 온누리상품권을 사들인 뒤, 실물 거래 없이 매출을 부풀려 환전 한도를 키우고 이를 은행에서 액면가 그대로 현금화했다. 서울에서도 유령 점포와 QR코드 조작을 통한 환전 편법이 만연했고, 이로 인해 작년 한 해 부정 유통된 상품권 규모만 2982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의 취지를 고려할 때 충격적인 수치다.

 

온누리상품권은 2009년부터 전통시장과 지역 상권을 살리기 위해 도입된 대표적인 정책 수단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상품권 깡’이나 ‘자전거래’ 등 방식으로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관행처럼 벌어지고 있으며, 관리감독은 사실상 손을 놓은 수준이다. 사용처 제한과 환전 시스템의 허술함이 악용되고 있으며, QR코드 공유나 비가맹점 대리 결제 같은 편법이 판을 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부정 사용이 단순한 개인의 도덕적 일탈이 아니라는 데 있다. 제도 설계 자체가 부실하고, 감시 체계가 현장보다 한참 뒤처져 있다는 점에서 국가 재정 운영의 구조적인 취약성을 드러낸다. '정부 돈은 먼저 본 놈이 주인'이라는 비정상적인 인식이 생겨난 배경에는 복지 제도의 빈틈과 책임 없는 행정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동시에, 여당에서는 1인당 25만 원의 민생지원금 지급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보편 지급과 선별 지급 사이에서 논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재정 집행의 투명성과 신뢰성이다.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는 어떤 방식이든 ‘먼저 보는 사람이 이익을 본다’는 왜곡된 시스템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최근 추진 중인 ‘18세 국민연금 자동가입’과 같은 제도 역시 국민의 불신을 피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운영 투명성과 감독 체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복지의 선의가 왜곡되지 않기 위해서는 재정 지원 조직 전반의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 정책 설계부터 집행, 사후 평가까지 일원화된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하며, 특히 중간 유통과정에서의 조작과 편법을 막을 감시 인력 및 디지털 시스템 보강이 시급하다.

 

정책은 단지 도입 그 자체로 효용이 완성되지 않는다. 온누리상품권 사례처럼 제도의 허점을 통해 세금이 줄줄 새는 현실에서는 그 어떤 복지 정책도 지속가능하지 않다. 국가가 지원한 돈은 공동체 전체의 몫이지, 먼저 눈치 빠르게 접근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제는 복지 전달 체계를 정비하고, ‘먼저 본 놈이 주인’이라는 왜곡된 인식을 벗어날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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