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김해국제공항에서 대만 중화항공 소속 여객기가 허가받지 않은 활주로에 착륙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자칫하면 수백 명의 인명을 위협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관제사의 긴급 판단으로 활주로 내 다른 항공기와의 충돌은 피할 수 있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이는 결코 ‘잘 마무리된 사고’가 아니다. 이는 단순한 착오가 아니라, 우리 항공 안전 체계 전반에 깔려 있는 구조적 문제를 다시 한 번 드러낸 중대한 사건이다.
사고는 지난 12일 오후 7시 19분, 타이베이를 출발한 중화항공 여객기가 김해공항 18L 활주로에 착륙하면서 발생했다. 그러나 이 활주로는 해당 항공기에 착륙 허가가 내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아직 정확한 착오 원인은 조사 중이나, 이는 명백히 관제와 조종 간 통신 오류, 혹은 공항 내 유도 체계의 미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불과 몇 년 전 무안공항에서 비슷한 사고가 발생해 세간의 충격을 안긴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주요 공항에서 유사한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은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사건 이후 일부 언론은 관제사의 빠른 판단이 대형사고를 막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미담 서사’는 본질을 흐리는 위험한 접근이다. 관제사의 대응은 응급 상황에서 마땅히 해야 할 직무였다. 중요한 것은 왜 이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는지, 구조적으로 어떤 허점이 존재했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점이다. 관제 시스템이 완벽히 작동했더라면, 애초에 오착륙은 없었을 것이다.
특히 김해공항은 지형상 시야 확보에 제한이 있고, 복잡한 활주로 구조를 가진 공항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작 공항 내 활주로 오진입을 막을 수 있는 국제 기준 수준의 방호 설비나 자동 경보 시스템은 여전히 부족하다. 미국이나 유럽 주요 공항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비해 자동화된 활주로 침입 감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활주로 진입 금지구역을 강화해 사고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토교통부와 한국공항공사는 이번 사고의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지만, 단순 조사로 그쳐서는 안 된다. 관제사의 실수냐, 조종사의 실수냐를 따지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왜 김해공항 같은 주요 관문 공항이 여전히 구식 체계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봐야 한다. 더욱이 대한민국은 아시아 항공 교통의 요충지로 자리 잡은 만큼, 관제 시스템과 활주로 안전 설비의 현대화는 시급한 과제다.
이재명 정부는 교통·항공 안전을 ‘국가 생명망’의 문제로 인식하고, 보다 강도 높은 안전 혁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특히 전국 공항의 관제 인력 근무체계 실태 전수조사, 오착륙 방지 시스템 구축 예산 증액, 국제적 수준의 활주로 감시 설비 도입 등을 포함한 종합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더 이상은 ‘관제사 덕분에 다행’이라는 말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구조적 문제를 방치하면 그 끝은 언제나 참사다.
이번 김해공항 사고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닌, 우리 항공안전 관리 시스템에 대한 경고다. 지금 필요한 것은 탁월한 한 명의 관제사가 아니라,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설계된 시스템과 그것을 뒷받침할 철저한 정부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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