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해국제공항에서 또다시 ‘오착륙’ 사고가 발생했다. 타이베이에서 출발한 대만 중화항공 여객기가 허가받지 않은 활주로에 착륙하려다, 공군 관제사의 긴급 제지로 충돌을 피한 것이다. 불과 3개월 전에도 유사한 사고가 있었고, 이는 단순한 조종사의 실수로 치부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다. 민간과 군이 활주로를 공유하고, 산악 지형까지 겹친 김해공항의 한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고 이후에도 달라진 것은 없다. 관제사는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착륙 유도 체계는 개선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 김해공항이 ‘특수공항’으로 지정된 이유가 무색할 정도다. 이번 사고가 대형 참사로 번지지 않은 것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정부는 매번 사고가 날 때마다 뒷북 대응을 반복하고 있다. 근본적인 시스템 정비 없이 공항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말은 공허하다.
문제는 비단 김해공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무안공항 역시 관제 인력 부족과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용객이 적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지원은 소극적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현장 인력과 지역 주민에게 돌아간다. 더욱이 작년 무안공항에서는 179명의 생명을 앗아간 참사까지 있었다. 이쯤 되면 “지방 공항 안전은 2순위인가”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가덕도 신공항 같은 대형 프로젝트에만 몰두하고 있다. 지역 균형 발전,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상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듯하다. 관제 인력 확충이나 관제 시스템 개선은 뒷전이고, 수요 예측조차 불투명한 신공항 사업이 우선시되고 있는 현실은 납득하기 어렵다.
관제사들이 하루에도 수십 대의 비행기를 관리하며 생명을 책임지는 업무를 하고 있음에도, 이들의 근무 여건은 낙후되어 있다.
연속 근무, 장시간 집중, 고강도 스트레스는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구조적 리스크다. 신공항을 짓는 것보다 기존 공항의 안전 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먼저다. 최첨단 활주로를 깔아도, 관제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국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항공 안전은 단지 기술적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사회 시스템의 신뢰 문제다. 대형 사고가 터져야 움직이는 수동적 행정, ‘예산 타령’만 반복하며 안전을 우선순위에서 밀어내는 정책 기조는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신공항이 아니라 ‘신관제 전략’이다.
공항 정책은 화려한 청사진보다 현실적인 안전 기준에서 시작돼야 한다.
사고는 이미 경고했고, 국민은 더 이상 관제 시스템의 ‘운’에 의존하며 비행기를 타고 싶지 않다.
'국가 정책(경제, 행정, 유통, 교육 등), 뉴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중 관세전쟁의 불똥, 삼성·LG도 피하지 못했다…한미 통상전략의 재정비 시급 (2) | 2025.06.16 |
---|---|
부산·경남 철도 인프라와 신공항 투자, 균형 있는 정책 추진이 절실하다 (2) | 2025.06.16 |
GNI 역전의 의미…이제는 일본을 넘어서기 위한 진짜 과제가 시작됐다 (6) | 2025.06.16 |
김해공항 활주로 오착륙 사고, 또다시 드러난 관제 시스템의 허점 (0) | 2025.06.16 |
정책 아웃소싱의 함정, 직접 키우지 않으면 혼란만 남는다 (4) | 2025.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