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철강을 포함한 가전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 주요 기업의 북미 수출 전략에 비상이 걸렸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보호무역을 넘어, 미-중 갈등 속에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커다란 흐름의 일부로 해석된다. 한미 경제 협력의 틀도 다시 조율이 필요해 보인다.
미국 상무부는 냉장고, 세탁기, 오븐 등 철강 함량이 높은 가전제품에 최대 50%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으며, 이는 6월 23일부터 시행된다. 특히 이 조치는 제품 전체가 아닌 철강 부품 단위까지 과세 범위를 넓히고 있어, 국내 부품을 활용하는 삼성·LG 같은 기업들에는 직접적인 타격이다.
삼성과 LG는 북미 시장에서 각각 약 61조 원, 23조 원의 연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이는 전체 매출의 25~30%에 달하는 비중이다. 북미 수출 의존도가 큰 상황에서의 고율 관세는 수익성 악화는 물론 시장 점유율 하락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위협 요소다. 기업들 입장에선 단가 상승이 곧 가격 경쟁력 하락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에 두 기업은 생산거점의 글로벌 재배치와 미국 현지 공장 활용 확대 등의 대응에 나서고 있다. LG전자는 테네시 공장의 생산라인을 늘리고 있으며, 삼성전자 역시 중남미나 아시아 내 생산 거점 재정비를 검토 중이다. 그러나 고급 가전에 필요한 철강의 품질 문제와 미국산 대체재의 가격 문제는 여전히 현실적 제약으로 남는다.
미국의 이번 조치는 단순한 산업 보호가 아니라 미-중 관세전쟁의 연장선에 있다. 중국산 저가 제품의 유입을 차단하고, 철강산업 등 전략 분야의 자립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한국 기업이 불가피하게 사이에 끼게 된 것이다. 미국은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려 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동맹국에게도 일정한 부담을 요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가 단기간에 끝날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미국 내 생산 인프라 확대와 부품 공급망의 다변화는 필수적이며, 동시에 정부 차원의 외교적 대응도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세종대 김대종 교수는 “미국 내 생산 확대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관세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번 관세 조치는 향후 산업용 로봇, 농기계, 보일러 등 철강 기반 산업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이는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닌, 한국 철강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리스크로 확대될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이야말로 한미 간 통상 전략을 점검하고 새로운 합의 구조를 도출해야 할 시점이다.
향후 한미 관계는 공급망 재편이라는 글로벌 흐름 속에서 ‘공급 안정성 vs. 산업 자율성’이라는 긴장 관계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국은 미국과의 외교적 협상을 강화하는 동시에, R&D 투자, 소재 국산화, 제3국과의 공급망 협력 등 다층적 전략이 병행되어야 한다.
결국 이번 사태는 단순한 비용 상승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무역 질서가 재편되는 전환기에 한국이 어떤 전략으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향후 10년의 산업 경쟁력이 좌우될 수 있다. 지금은 민관이 머리를 맞대고 장기적인 해법을 모색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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