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한 경기 속에서 한국과 중국이 공통적으로 선택한 처방은 ‘돈 풀기’다. 대한민국에서는 소상공인 대출 확대와 소비쿠폰 지급이, 중국에서는 보조금과 쇼핑축제가 내수를 자극하는 도구로 등장했다. 물론 효과는 있었다. 중국의 경우 지난 5월 소매판매가 전년 대비 6.4% 증가하며 시장 기대를 웃돌았고, 한국도 ‘119 플러스’ 대환대출과 최대 50만 원의 민생소비 쿠폰 지급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일시적 소비 증가와 체감 경기 반등이라는 목표엔 일정 부분 도달한 셈이다.
하지만 누구나 안다. 이것은 단기 처방일 뿐, 구조적 해법은 아니라는 사실을. 중국 경제도 그늘은 여전하다. 산업생산은 기대치를 밑돌고, 부동산 투자는 10% 넘게 감소했다. 주택 가격은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소비는 늘었지만 생산과 투자라는 실물 경제는 여전히 차가운 것이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이 치솟고 있다는 점은 소비 진작이 결국 부채를 늘리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정치권은 이를 알면서도 ‘단기 성과’에만 집착하고 있다. 정부는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전국민에게 차등 지급하는 소비 쿠폰을 통해 민심을 달래려 한다. 국민은행, 신한은행 등 시중은행들도 정부 기조에 맞춰 비대면 대출 한도 확대, 금리 인하, 폐업 컨설팅 등 각종 서비스를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시도는 단기 수요 진작이라는 목표에 묶여 있다. 장기 전략, 예컨대 산업 구조 전환, 고용 안전망 강화, 지역 상권 재편 같은 체계적 대책은 여전히 뒷전이다.
“돈을 풀면 통하잖아”라는 말은 어쩌면 정치와 행정의 자포자기적 자기 위안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소비 진작은 즉각적인 수치로 나타나기에 정치적 성과로 포장하기 좋다. 그러나 그 수치는 지속될 수 없다. 중국도, 한국도 지금처럼 단기 대책만 되풀이한다면 내수는 일시적으로 반짝이고 다시 꺼질 뿐이다.
이재명 정부가 약속한 자영업자 대환대출, 장기 분할 상환, 폐업 유예 등은 그나마 중장기 관점에서 환영할 수 있는 접근이다. 하지만 정작 실행과 제도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경제 정책은 이벤트가 아니라 인프라다. 정부와 정치권이 이벤트성 돈 풀기를 넘어서 구조 개편이라는 숙제를 진지하게 마주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돈을 쏟아도 내수는 살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단기 부양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문제는 능력이다. 알면서도 실행하지 못하는, 또는 하지 않는 현재의 리더십이야말로 가장 큰 경제 리스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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