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시 청도면 고법리 화악산 자락에 묻힌 박익(朴翊, 1332~1398)은 고려 말 두문동 72현 중 한 인물로, 그의 삶은 충절과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는 태조 이성계의 부름을 다섯 차례나 거절하며 ‘불사이군’의 정신을 지켰고, 그의 이야기는 후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박익의 출생과 배경
박익은 1332년 송계마을에서 태어나 1352년(공민왕 2) 과거에 급제하였습니다. 그는 이색(李穡), 박상충(朴尙衷)과 함께 학문을 교류하며 성장하였고, 이성계와 함께 전장에 나가 왜구와 홍건적, 여진족을 물리치는 등 무인으로서의 경력을 쌓았습니다. 그는 예문춘추관과 직제학을 거쳐 고려가 망하던 해에는 예조판서를 역임했습니다.
고려에 대한 충절
고려가 무너질 무렵, 박익은 고향인 밀양 송계마을에서 은둔하며 정몽주를 맞이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정몽주에게 건넨 시가는 “송계마을 숨은 선비 집을 찾아오셨소”로 시작하는 작품으로, 두 사람의 깊은 유대를 잘 보여줍니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후에도 박익은 여러 차례 공조판서와 형조판서, 예조판서로 불림에도 불구하고 모두 거절했습니다. 그는 “눈멀고 귀 멀었다”는 핑계를 대며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습니다.
박익은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에서 “너희들은 이씨의 세상에 있다.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되었으니 온 힘을 다해 충성을 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이는 그의 후손들이 조선시대에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로 여겨집니다.
밀양 화악산 자락의 풍수적 특성
박익의 묘가 위치한 밀양시 청도면 고법리 화악산 자락은 풍수적으로 매우 유리한 지역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곳의 자연환경과 지형적 특성은 음양오행설에 기반하여 여러 긍정적인 요소를 제공합니다.
지리적 위치: 화악산은 밀양과 청도의 경계에 위치하며, 주변에는 높은 산들이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은 외부의 해로운 기운을 차단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모으는 데 기여합니다.
산과 물의 조화: 화악산 자락에는 흐르는 물줄기가 있어, 물은 생명력과 기운을 상징합니다. 물과 산이 조화를 이루는 이 지역은 풍수적으로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주민들에게 안정감과 번영을 가져다주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안산과 묘역의 배치: 박익의 묘소는 화악산 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그 주위에는 다른 기념비적인 묘역이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묘역들은 자연의 기운을 잘 받아들이는 위치에 있어 후손들에게 안정감과 번영을 가져다줍니다.
역사적 유산과 문화: 화악산 자락은 박익과 같은 역사적 인물과 관련된 유적지가 많아, 그 자체로도 풍수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지역의 전통적인 문화와 역사적 유산은 주민들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공동체 생활과 전통: 청도면 고법리는 전통적인 농업과 공동체 생활이 이루어지는 지역입니다. 주민들은 자연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살며, 이러한 삶의 방식은 지역의 풍수적 기운을 잘 보존하고 있습니다.
박익의 묘와 고분벽화
박익은 밀양시 청도면 고법리 화악산 자락에 묻혔습니다. 그의 묘는 고려 양식을 띠고 있으며, 두 차례 도굴당한 후 동아대 박물관의 주관으로 발굴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때 고분벽화와 지석, 혼유석 등이 출토되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박익의 묘에서 출토된 고분벽화는 고려시대 생활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현재 국가문화재 사적 제45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후손들의 노력과 전시관 건립
밀성 박씨 송은공파 문중에서는 박익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벽화묘 전시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남긴 고분벽화와 함께 후손들이 그의 삶과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한 노력입니다. 박익의 후손들은 지금도 그의 충절을 기억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박태준 전 국무총리,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 등 많은 인물들이 그의 후예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박익의 정신을 이어받아 사회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결론
박익의 이야기는 고려에 대한 강한 충절과 그리움을 상징합니다. 그의 삶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넘어, 후손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깁니다. 밀성 박씨 송은공파의 후손들은 박익의 정신을 계승하고, 그를 기리는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앞으로도 이들의 노력으로 박익의 정신이 잘 보존되고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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